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이삼년전만 해도 기술호황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세계 주식시장은 다시 불붙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인공지능 투자다. 인공지능 뿐만 아니라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산업들이 전반적으 로 활기를 띠고 있다. 여기에 유럽과 중동 전쟁에 따른 관련국들의 공공부문 지출증가도 활황에 한 몫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청과 의회예산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예상보다 크 게 증가하였다. 인공지능 덕분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인공지능이 실제 시장에서 활용되 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되고, 더욱이 언어중심 인공지능 모델이 나타난 것은 2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까지 안 가더라도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이 노동생산성을 상 승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인공지능의 효과가 아직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성 증가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인공지능이 사회전반에 응용될 때 나타날 효과는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래도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면 회사가치는 내려갈 수 밖에 없으므로, 미래주가는 장담할 수 없다.
현재의 인공지능투자 수준이 전체로 보면 과잉투자일 가능성도 있다.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투자 총량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의 질이다. 최상위 기업들이 시장을 독식하는 게 기술시장의 구조인데, 선두로 치고 나가기 위한 투자가 엄청나게 커서, 기업이 기술에 대해서나 시장에 대해서나 한번 판단을 잘못해서 실패하면 사업전환을 위한 재원 마련이 힘들어 망하기도 쉽다.
기술적으로 앞서가는 기업들과 따라만가는 기업들 사이의 간격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거품 이 정리되면 주가가 양극화될 수 밖에 없다. 기업뿐만 아니라 사람도 기술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소득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지난 몇십년간 전세계적으로 기업 간이든 사람간이든 양극화가 진행되어 왔는데, 신기술호황과 함께 다시 양극화가 가속화될 수밖 에 없게 되♘다.
소득양극화는 정치불안의 원인이 된다. 기술호황과 그에 따른 양극화의 귀환에 우려가 따르 는 이유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등이 양극화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으로 발생한 사건들인데,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영국정치는 리더십이 몇번 바뀌며 혼 돈을 거듭하고 있는데, 크게 보면 유럽연합탈퇴의 후유증이다. 미국은 대통령제라서 리더십의 빈 번한 교체는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좌충우돌 리더십으로 전세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양극화를 줄이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술발전과 기술적용의 속도조절이고, 다른 하나는 효율적인 소득재분배 메커니즘의 도입이다. 둘다 기술호황을 다소 가라앉히는 결과를 낳 는다. 지나치면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할 수 있다. 그래도 정치적 혼란을 통해 조정되는 것 보다는 낫다.
한국의 주식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역량을 가지고 있는 게 큰 자산이다. 한국의 대기업 중에는 이제 글로벌 최상위 기업의 반열에 오른 기업들이 많다. 이 렇게 된 데는 한국 자체의 혁신역량 성장이 중요한 요인이지만, 운도 따랐다. 미국은 과거 자신 을 경제적으로 추월할 가능성이 있는 일본의 성장을 견제했고, 최근에는 역시 자신과 경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견제를 받기는 했으나, 다른 시장에서는 배척된 경 우가 많지 않다.
한국은 대외적으로 영악하거나 음흉하게 보이지 않고, 성실하고 순수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이렇게 된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틀을 지키고 키워온 게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 각한다. 이번 기술호황이 정치혼란으로 가지 않고 잘 소화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