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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꽃이 눈덩이처럼 피었다. 오글오글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아서 불리는 이름. 조만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하여 순백의 눈가루를 온 천지에 뿌릴 것이다. 그래서 설토화라 부른다.
그러나 지구는 누더기옷을 입은 것 같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은 더욱 더 비참한 대조를 보여준다. 최근 인도는 하루 확진자가 40만명을 넘으며 사망자 속출로 불타는 집이 되고 있다. 세계 곳곳 불타지 않는 강 건너가 어디 있으랴만, 몇몇 나라는 백신 독점 덕에 마스크를 벗고 해방의 춤을 추기도 한다.
지구는 단 한 개의 사과다. 그러나 반쪽 너머가 시름시름하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 (「맨발」문태준), 고통 받는 수많은 나라에 위로와 희망의 무조건적 지원이 절실하다.
불교 초기 ‘분소의(糞掃衣)’란 가사가 있다. 사람들이 내다버린 천조각을 주워 모아서 기워 만든 스님의 옷을 말한다. 수행자의 검소함을 상징한다지만 얼마나 지저분하고 얼룩덜룩했을까? 그래서 황토로 염색하여 너덜한 색을 무너뜨렸다. 때문에 승려의 법의를 ‘괴색壞色’이라고도 한다. ‘색’이라는 물질과 분별심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상징적 의미다.
또한 점점 도시국가가 팽창하고 환경이 좋아지면서 도시인들은 단정한 복장의 수행자를 원했다. 이에 붓다는 시대에 맞는 복제개혁〔할절의割截衣〕을 단행한다. 깨끗한 천을 일부러 조각조각 재단하여 누더기옷을 만든 뒤 황토로 염색한 옷을 입게 한다. 단정하고 세련된 가사가 등장하게 된다. 가사의 전통은 유지하고 대중의 마음에 부응한 것이다.
이러한 붓다의 열린 자세는 신흥종교인 불교를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시키며 대중화한다. 이는 고정된 사고가 아닌 시대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변모한 중도의 원칙 때문이다. 또한 붓다는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는 파격에 이른다.
작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50개 주마다 다른 모양과 분열된 민심을 보았다. 그 당시 미국의 지도는 누더기옷을 연상시켰다. 이는 갈기갈기 찢어진 국민의 갈등을 반증한다.
유일한 분단국,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은 어떨까? 이념의 대결구도를 넘어 지역 간, 계층 간, 젠더 간, 세대 간 갈등으로 분열되고 있다. 이는 개성과 다양성이라는 문화현상이 아닌 사회와 국가의 통합을 해치는 갈등의 씨앗은 아닌지? 나 자신 또한 이기적 사고, 내로남불에 갇힐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섬뜩한 나, 탐욕의 나, 모순의 나를 발견한다. 점점 기름진 나, 배가 부르는 내가 두렵고, 편향된 광신의 이념과 폭주의 자본이 무섭다. 지금도 독재의 희생양으로 몰리는 죄 없는 어느 국민들의 절규가 섬뜩하다. 어쩌면 브레히트 시인의 말처럼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살아갈지 모른다.
귀 기울여보자. 정서는 없고 경쟁이 난무하는 이 시대의 거친 숨소리를. 각자 뒹굴며 뼈다귀시만 짓는 이념적 구호를. 누더기 된 우리들을 바라보자. 갈기갈기 터지는 누더기 소리를 누가 잠재울까.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얼룩덜룩 누더기 색을 무너뜨린 수수한 황토색처럼, 누더기 소리를 잠재우는 범종이 크게 울리길 소망한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온 세상에 약비가 흠뻑 내리길 기도한다. 코로나 백신도 은총의 설토화처럼 온 세상에 골고루 뿌려지길 희망한다.
백신은 무기가 아니다. 공덕을 쌓는 마음의 부자나라가 속속 출현하는 정의로운 지구를 기대해 본다.
/왕태삼
전북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