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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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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이면 좋았다. 들로 산으로 내달리며 놀기에 바빴던 우리에게 달콤한 꽃잎은 좋은 간식거리였다. 간혹 아카시아 꽃잎을 집으로 가져오는 날엔 아버지는 급히 없애버렸다. 나는 이유를 몇 해 지나서 알게 되었다. 하루는 소나기가 거세게 쏟아져 사촌과 마루에 앉아 계신 할머니 옆에서 놀았다. 소나기가 그치고 눈이 부시게 맑은 푸른 하늘에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색일 것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우리는 마루 끝에 누워서 머리를 늘어뜨리고 뭉게구름 피어나는 현장을 목격하며 감격스러워했다. 할머니도 같이 하늘을 보시며 ‘아카시아 냄새가 나는데, 둘째야 너는 언제 오느냐?’ 하시기에 ‘할머니, 삼촌은 할아버지 제삿날에 오시겠죠.’하고 대답했더니 할머니께서 화들짝 놀라시며 우리를 한참 바라보시었다.
할머니는 오월 어느 날부터 마루에 앉아서 종일토록 대문만 바라보셨다. 가끔은 작은 소리로 ‘버스는 아직도 오지 않았냐?’ 하시었다. 그러면서 대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루 생활은 두 달 동안 이어진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부터 유월이 다 가도록 할머니의 계절 우울증은 매년 반복되었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유월병’이 도졌다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며 할머니께서 우울증을 극복하기를 바랐다.
소이 ‘유월병’ 이라는 우울증은 육이오 전쟁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할머니는 육이오 전쟁에 참전한 둘째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며 두 달을 기다신다. 당시에 총각으로 참전해서 후손이 없는 터라 더 안타까워 했다. 그런 할머니께서 내가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었을 때 먼 나라고 영영 가시고 말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법인장으로 일할 때다. 공장에서 필요한 급냉기를 구입하기 위해 이탈리아 제품과 터키제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떻게 알았는지 약속을 하지 않고 터키 지점장이 찾아왔다. 서른네 살의 젊은 지점장은 앉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한국에 대해서 많은 애정이 있고 특별한 가족사가 있다며 예기를 했다. 자기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우군으로 참전했다가 전투 중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용산에 다녀왔으며 자기는 아직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계획을 세우겠다고 하며,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나라이며 투르키 민족과 문화가 비슷해서 친밀감이 느끼며 친구국가라고 하였다. 우리도 터키에 대해서 형제국으로 생각하고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는 터키에게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이런 만남으로 인해 3만 달러나 비싼 터키제품을 구입하였다. 회사에서는 이탈리아 산을 은근히 원했지만 용량이 큰 터키제품으로 오래 쓰자고 했다. 이후 우리는 가까워져서 자주 만나 우정을 키웠다.
대한민국은 특별한 나라이다. 특별한 민족이 특별한 문화와 정신으로 기적을 이룩한 나라이다. 1000여 번의 침략에서도 국권을 잃지 않고 국가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36년과 6·25 전쟁을 겪고도 선진국에 들어선 나라이다. 지금은 경제만이 아니고 매우 특별한 문화를 세계인들과 공유하게 되었으며 군사적인 힘도 강성하다. 지구상에 이런 독특하고 특별하게 기적을 이룩한 나라는 유일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고 육이오 전쟁을 경험한 분들도 아직 생존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며 평화로운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전쟁은 대부분 국가 간에 벌이는 것이며 타민족 간에 싸우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하여 한민족끼리 매우 치열하고 잔인한 전쟁을 겪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 일 같지 않다. 군사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고 각종 무기가 부족한 상태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다. 1950년 육이오 전쟁 당시 우리가 처한 처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저절로 이룩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젊은 목숨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목숨의 값어치를 어떻게 환산해야 할까? 정치인에게 국민의 목숨값을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아 정신차려라. 당파와 당내권력을 차지하는 게 우선이 아니고 나라와 국민의 안녕이 우선이다.
/김현조
전북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