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기획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눈] 운다와 노래한다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8.25 15:30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예전에 살던 단독 이층집은 조경이 비교적 잘 되어 있어 이층으로 된 정원이 있었다. 여러 가지 정원수와 잔디가 심겨 있었는데 봄날 아침이면 직박구리 한 쌍이 날아와서 지저귀며 노닐었다. 한 마리가 이리 날면 또 한 마리가 쪼르르 따라 날고 저리 날면 또 쪼르르 따라 날면서 아주 금실이 좋아 보였다. 언젠가 초여름, 키가 조금 큰 박태기나무에다 둥지를 짓기 시작한 직박구리를 보며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둘이서 무슨 깃털 같은 것을 물어 오는가 하면 어디서 지푸라기, 휴지 같은 것도 물어 와서 동그란 모양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어느새 둥지를 반도 더 지어가는 직박구리 부부를 가상히 여기며 기대에 부풀었다. 우리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보통 “새가 운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서양에서는 “새가 노래한다”로 표현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운다(Crying)”와 “노래한다(Sing)”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차이가 있다.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른 요즈음이지만 오랜 기간 쌓인 애절한 한(限) 속에서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우리네 정서와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하며 더욱 개인주의적인 서양인들의 관습에서 오는 차이일까. 일찍이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외암(隈庵) 이간(李柬)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새도 감정이 있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기에 울 수도 있고 노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날지 못하는 아기 새가 뱀의 공격을 받아 그만 새끼를 잃은 어미 새의 소리를 운다고 해야 옳고 한 쌍의 새가 신혼의 둥지를 만들면서 지저귈 때는 분명 기쁨의 노래를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 괌 북서쪽 740km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이 우리 지방에도 영향을 주어 밤새 불어대는 강풍이 우거진 숲의 나무들을 흔들어대니 무성한 초록 잎들의 아우성에 조금 두려울 정도의 밤이 지나갔다. 나는 맨 먼저 정원에 나가 짓다 만 둥지를 찾았다. 그러나 설레고 기대했던 직박구리의 둥지는 산산이 부서져 그 아래 잔디밭에 사정없이 패대기쳐져 있었다. 그 이후 직박구리 부부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둥지를 지을 때 서로 지저귀던 소리는 분명 노래였으리라.

/배 순 금 시인
전북시인협회 익산지역위원장


저작권자 주)전라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