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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정상을 향하여, 登高自卑(등고자비)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8.28 17:51 수정 0000.00.00 00:00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그를 거스르면 안 됨을 이른
가르침들이다
그런데도 빨리빨리 문화에 편승한
영재교육이나 조기 속성교육 등이
몰고 올 폐해로
함께 권도(與權)를 행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 e-전라매일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일을 이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굳게 지켜 이뤘다고 해도 함께 권도를 행할 수는 없다.” 배움의 네 단계를 표현하고 있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함께 배움을 구하는 ‘공학(共學)’, 도를 찾는 ‘적도(適道)’, 예의 등 일반 도리를 모두 깨우쳐 더불어 행하는 ‘여립(與立)’ 그리고 개별 특수 상황에 맞는 행동인 권도를 함께 행하는 ‘여권(與權)’의 차례이다.
학문에 뜻을 두어 공부를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 그 꽃을 피우지 못하고, 학문의 꽃을 피웠다고 해도 모두 다 그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위기지학에서 시작한 공부가 최고 경지인 권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절차와 단계가 있으며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암시한다. 서지도 못하면서 걷고자 하면 넘어지지 않는 자가 드문 이치와 같다.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공부할 것을 권하는 공자의 가르침은 논어 곳곳에 드러난다. 즉, 제자 자로가 귀신 섬기는 도리를 묻자 “삶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슨 죽음을 묻느냐?”라고 말한다. 사후 세계의 귀신 섬기는 일보다도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사람 섬기는 당장의 효도에 더 충실하며 열심히 살 것이지 죽은 후 슬퍼해도 소용없다는 암시이다.
또 어린 제자 자고를 비읍의 읍재로 삼자 “남의 자식을 해치는구나!”라고 걱정한다. 학문적으로 미성숙한 자고를 관직에 두면 유혹에 흔들릴 소지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여러 이유로 궁색한 변명을 일삼자 “이 때문에 말 잘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탄식한다.
그래서 거보 땅의 책임자가 된 자하가 그곳을 잘 다스리는 법을 묻자,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끗에 집착하지 마라. 빨리하고자 하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끗을 염두에 두면 큰일을 망치게 된다”고 이른다. 빨리 효과를 거둬 자랑하며 사욕을 탐하면 대사를 망치게 됨을 자하의 성격에 견주어 말한 것이다.
이는 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경구가 아니다. 누구나 범하기 쉬운 필부의 속성인 것이다. 특히 치적을 남기고 싶어 안달인 위정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이와 함께 자장에게 “성현의 발자취를 밟지 않으면 궁극적인 도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 명구 역시 함께 기억 해야 할 귀감이 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차근차근하게 정진하라는 주의 겸 당부다. 맹자 또한 많은 사례와 함께 꾸준한 학습을 주문한다. 즉, 송나라의 한 농부는 자신의 벼가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이 안타까워 궁리 끝에 벼의 순을 조금씩 뽑아 더 자란 것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이튿날 벼는 하얗게 말라 죽고 말았다는 ‘알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다.
이와 함께 물은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우지 않고서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도에 뜻을 둔 군자도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물의 속성 ‘영과이진(盈科而進)’ 역시 점진적 발전을 뜻하는 경구가 된다.
등급을 넘어 건너뛰기식 엽등(躐等) 공부를 한다면 자칫 명성만을 생각한 나머지 대사를 그르치기 쉬운 것(聲聞過情)과도 같다. 군자는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맹자의 가르침이다. 그렇다! 어떤 일의 완성에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향기로운 꽃은 추운 겨울을 이겨야 하고, 탐스런 과일은 천둥 번개의 시련을 거쳐야 하며, 예쁜 옥동자는 10개월의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완전함은 시간의 아들이다’라는 말이 진리로 다가온다. 시간이 발걸음 해야 일의 결과를 볼 수 있으니 이 둘은 늘 같이 다녀야 하는 빛과 그림자인 셈이다.
세상에 시간이 해내지 못한 일은 없으며,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성품 또한 없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학문하는 순서가 있었으니 차례대로 숙성하여 체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발아래부터 잘 살피라는 불가의 ‘조고각하(照顧脚下)’ 역시 이와 통하는 할구다. 고원한 이상보다는 내 주변이나 처한 현실, 남과 비교하기 전에 우선 자신부터 직시하라는 의미다. 신발 정돈이 잘 된 집안은 도둑도 그냥 지나간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구층의 전각도 애초에는 조그만 흙덩이를 쌓는 일부터 일어나고, 천 리 길도 발밑의 한 발자국부터 시작된다” 노자의 가르침이다. 차례대로 순서를 밟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세상 이치를 담고 있다. “군자의 도란 이를테면 먼 곳을 가기 위하여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는데 낮은 곳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낮은 곳부터 시작하는 ‘등고자비(登高自卑)’나 가까운 곳부터 출발하는 ‘행원자이(行遠自邇)’라는 고사의 근거가 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메어 못 쓴다”, 티끌 모아 태산 등도 등고자비의 다른 표현들이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그를 거스르면 안 됨을 이른 가르침들이다. 그런데도 빨리빨리 문화에 편승한 영재교육이나 조기 속성교육 등이 몰고 올 폐해로 함께 권도(與權)를 행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할까를 두려워한 것은 기우일까?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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