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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기획|특집

신동아고속관광 성흥수 대표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8.30 13:44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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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진안군 안천면에서 출생

진안군 북동쪽에 있는 안천면(顔川面).
동쪽엔 723m 지장산, 629m 쌍교봉, 579m 형제봉 등이 솟아 있다. 이런 높은 산과 봉우리 너머엔 무주군 부남면이 있다.
북서쪽으로는 금강을 건너 용담면이 있고, 서쪽엔 정천면이, 남쪽엔 상전면과 동향면이 접한다.
안천면도 여느 산골처럼 쌀농사와 보리농사가 주를 이루지만 약초 재배도 많이들 하고, 축산과 임업을 하는 농가도 많다보니 버섯과 산나물이 특산물이다.
신동아고속관광 성흥수 대표의 고향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다. 1948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4남 1녀 중 둘째다. 부모님이 일구던 농경지는 그리 넓지 않았다.
성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 뒤, 1년 정도 고향 집에 머물렀다. 그럴 때,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다.
“내 고향 안천면엔 하루에 버스가 왕복 세 번을 들어왔다. 전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안천을 거쳐 무주로 갔다. 무주에 갔던 그 버스가 안천을 거쳐 전주로 나갔다.
나는 전주에서 버스가 들어오면 무주로 떠날 때까지 바라보았다. 전주에서 누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해서다.
누군가 나를 차에 태우고 데려가서 무슨일이든 맡겨만 준다면 그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튼 초등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고향에서 아버지 농사일을 도우면서 늘 도시로 나갈 꿈을 꾸었다.”

■ 전주로 나와 태평동 전매청 매점에서 근무

성흥수 대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만에 전주로 나왔다. 손위 형이 전주에 살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성 대표는 전주 태평동에 있던 전매청 매점에 취업했다.
“오랫동안 소망했던 대로 전주에서 취직을 하는 꿈을 이루었기에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몸에 탈이 났다. 전매청 매점에서 근무한 지 6개월 쯤 지났는데, 몸이 아파 병원에 가니 결핵 초기라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던 형이랑 자취를 했는데, 먹는 것이 부실하다보니 그런 탈이 났던 것이다.”
성 대표는 매점 사장님이 지어 준 약을 들고 낙향했다. 6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서 휴양을 하니 결핵이 싹 나았다.
“결핵이 완치된 뒤 전주로 나가서 전매청 매점에 갔더니만 다른 사람이 내가 맡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병을 치료하러 고향에 내려 간 사이 다른 종업원을 구했던 것이다.
그 종업원을 내보낼 수 없어 난감해하던 매점 주인이 나를 다른 직장에 추천해 줄테니 며칠 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다시 고향에 내려가 있으니 이틀쯤 지나 매점 주인의 연락이 왔다. 빨리 와보라고 해서 전주에 가니 매점 주인은 나를 잡화가게에 추천을 해주었다.
삼랑상회였다. 전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잡화상으로 남문에 있었다. 당시 전북의 잡화업계는 전주에 있던 삼랑상회, 조광상회, 화랑상회가 거머쥐었다.
지금은 다들 없어졌지만 1960년대 그 잡화상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내가 근무했던 삼랑상회엔 종업원이 11명이었다.
삼랑상회 사장님은 나를 잘 보았던지 수금 사원을 시켰다. 그래서 나는 전주 시내는 물론 외곽 지역에 있는 거래처로 수금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다음에 이런 가게를 차릴라면 돈을 얼마나 벌어야되나. 생각을 해보니 평생 직장생활을 해도 그런 돈을 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시절, 삼랑상회에서 내가 받던 월급은 1,500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삼랑상회를 그만두고 전주 시내에 있던 야간 중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중 서울에 온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도 한 때 삼랑상회 직원이었다. 서라벌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그 친구를 따라 더 큰 꿈을 이루어 보겠다고 작정을 하고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그렇게해서 내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 충북 진천에서 청소년 수련원 운영

성흥수 대표는 신동아고속관광을 운영하기 전, 충북 진천에서 청소년수련원을 운영했다. 1990년대의 일로 당시 성 대표의 나이는 50대였다.
성 대표가 운영했던 청소년수련원은 먹을거리, 교육과정, 임직원의 서비스 등은 수준급이었다. 해서 정말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학생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전 답사를 왔던 책임자들이 발걸음을 돌렸고, 사전 예약을 취소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사정을 알아보니 열악한 시설이 문제였다. 이곳저곳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수련원이 하나 둘씩 들어서는데, 우리 수련원의 시설은 낡고 빈약했다.
수련원 부지와 건물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임대를 해서 수련원을 운영한 것인데, 열악한 시설 때문에 기반을 잡아 놓은 사업을 포기할 수 없어서 내 돈을 들여서라도 새롭게 단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설을 싹 뜯어버리고 콘크리트로 건물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사에 들어갔는데,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 때문에 대출이 중단되고, 공사도 중단되고, 수련원 전체가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
1997년 IMF 때, 성 대표는 진천에서 운영하던 청소년수련원을 포기하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실직 기간은 길지 않았다. 진천에서 청소년수련원 운영을 잘했던 경력 덕분에 충남 아산시 고도에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이 운영하는 청소년수련원의 원장으로 영입됐다.
도고 파라다이스 호텔 청소년수련원은 시설도 좋고 규모도 컸다. 그러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다. 연간 이용객은 약 10만 명이었다.

■ 2003년 신동아고속관광 인수

예기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 성흥수 대표는 한동안 몸을 담았던 도고 파라다이스 호텔 청소년수련원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신동아고속관광 전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도고 파라다이스 호텔 청소년수련원 원장을 맡고 있을 때, 신동아고속관광의 버스를 많이 이용했다.
그런 인연이 있었는데, 내가 파라다이스 호텔을 그만 두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동아고속관광 대표가 연락이 왔다. 만나보니 여러 가지 사정을 토로한 뒤, 신동아고속관광을 인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생소한 분야여서 수락을 고민했다. 며칠 고민 끝에 결국 수락했다. 그 어렵다는 청소년수련원을 직접 경영해 해보기도 하고, 맡아서 경영한 경험도 있는 터라 전세버스 회사의 운영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신동아고속관광을 인수했다.”
성흥수 대표가 이런 사연으로 신동아고속관광을 인수한 건 2003년의 일이다.
“그때 전세버스 회사 운영의 관건은 기사님들 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최고의 택시 회사라는 MK택시가 떠올랐다. 기사님들 복지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일본 MK택시 같은 성공 신화를 우리나라 전세버스업계에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동아고속관광 인터넷 홈페이지에 성흥수 대표의 인사말이 적혀 있다.
“신동아고속관광(주)은 고객의 믿음을 통한 고객감동을 창출하는 전세버스전문업체로서 고객의 생각보다 한발 앞선 창조적인 생각과 혁신을 통하여 전세버스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여 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고객 만족 노력은 개별고객의 증가와 단체행사 수송의 원동력이 되어 왔으며, 이는 곧 고객과의 유대관계를 지속적이면서도 발전적으로 돈독하게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신동아고속관광의 모든 직원과 승무사원들은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기본에 충실한 회사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한 발 앞선 생각과 혁신을 통해 전세버스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 온 신동아고속관광, 현재 약 90대의 관광버스를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입차가 아닌 직영차를 운영하는 우리나라 전세버스 회사 중 에서는 우리 신동아고속관광이 아마 제일 큰 회사 일 것이다.
신동아고속관광엔 지입차가 한 대도 없다.”

■ 2010~2014년 재경진안군민회장 역임

신동아고속관광 성흥수 대표는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재경진안군민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2010년 11월 12일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재경진안군민회 회장에 추대된 성 대표는 소감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재경진안군민회 역대 회장님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임원진과 읍·면회장님을 중심으로 협의해 나가겠다. 미약한 사람이지만 진안군민과 재경진안군민회의 교류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성 대표는 현재 재경진안군민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 지난해 새마을운동 강동구지회 회장 취임

성흥수 대표는 서울시 강동구에서 50여년 동안 살고 있다. 강동구 관내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다.
강동구 발전위원회 상임고문, 민주평통자문회 강동 1지역회장, 강동구 교통민원신고 심의위원회 위원, 강동구상공회 수석부회장, 강동문화원 부원장, 강동구 교통심의 위원, 강동구 명일2동 주민자치위원장 등이 오늘날까지 맡은 바 있는 직함이다.
성 대표는 작년에 새마을운동 강동구지회 회장을 맡았다. 회원 수는 약 600명.
“군대 제대를 하고 난 뒤에 정착한 곳이 서울 강동구다. 강동구에서 참 많은 일을 했다.
지난해 맡은 새마을운동 강동구지회 회장, 정말 보람 있는 직함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새마을 운동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기초 운동이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현재 새마을 운동은 탄소 중립의 깃발을 들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예전에 먹고 사는 문제를 강조했던 새마을운동이 지금은 우리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특히 환경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는 이 새마을운동에 큰 보람을 느끼며, 이 운동에 정말 한번 매진해 보고 싶다.”
‘친절 그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게 우리의 첫 번째 서비스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신동아고속관광. 성 대표가 이 전세버스 회사를 2003년에 인수했으니, 내년 2023년은 경영 20주년이 되는 해다.
지입차가 아닌 직영차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세버스전문업체로 손꼽히는 신동아고속관광의 안전과 성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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