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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이락사李落祠를 가다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10.19 19:06 수정 0000.00.00 00:00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라는 말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처럼 새롭게 다가온다

ⓒ e-전라매일
역사를 통해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이다. 아산 현충사는 경찰공무원으로 재직 당시 직무교육 과정을 통해서 참배한 적이 있지만 남해의 이락사는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표현문학(회장 조미애)이 주관하는 문학 기행에 함께하게 되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8월 26일 아침 일찍부터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출발 3시간 넘게 달려서 남해대교에 도착했다. 남해각에서 남해대교를 비롯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사진 몇 컷을 폰에 담고 부근 생선 횟집에서 회덮밥으로 점심을 들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그곳 충렬사忠烈祠에 들러 잠시 참배한 후 약 4km 거리를 달려서 드디어 관음포 순국 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구의 총탄에 맞아 순국한 후 처음 육지에 올려진 곳으로 성지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관음포가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 한쪽에 그의 순국을 기리는 이락사李落祠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락사는 이李가 떨어진(落) 자리의 사당이란 뜻이다. 오래된 소나무 숲속에 비장한 기운이 서려 있는 이락사, 현판을 바라보는 순간 숙연한 마음 머리 숙여 나라의 안위를 빌었다.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 뒤 일행들과 함께 오솔길을 따라 첨망대瞻望臺로 향했다.
그곳 첨망대에 올라 노량해전의 무대였던 관음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순간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영령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가슴이 뛰었다. 노량해전을 앞둔 전날 밤 이순신은 이렇게 기도했다. “만약 이 원수를 섬멸할 수 있다면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겠나이다.”라고…… 1598년 11월 19일 아침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이순신은 관음포로 도주하는 왜군을 쫓던 중 가슴에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대성운해大星隕海,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 그가 전사하던 날 7년간의 전쟁은 끝났다.
조명연합군 함대와 일본 함대 전부가 맞붙은 겨울 바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지금 전쟁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이 전투에서 일본 전선 200척이 불타고 50여 척이 도주했다.
충무공, 그는 눈물겹도록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시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지방 관아의 객사나 병졸들의 집 또는 종들의 행랑방에서 잠을 자고 얻어 먹어가면서 다시 싸우는 남쪽 바다로 내려갔다. 그는 백의종군의 길에 나서기까지도 오직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가 하면 백의종군하는 동안 모친을 잃는 생애 최대의 슬픔까지도 겪어야 했다.
그가 전선에 도착했을 때 서인 세력의 비호를 받던 원균의 부대가 칠천량 싸움에서 참패했고 이 싸움에서 조선 수군 거의 전부가 궤멸하였다. 남은 것은 전선 12척과 사기가 꺾여 흩어진 패잔병들 뿐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을 받고 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신에게 아직도 12척이 남아있고 (尙有十二) 제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微臣不死) 살아있는 한 적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명량해전에서 그는 12척의 배를 몰고 나가 적선 350여 척을 부수었다. 적들은 궤멸하였고 살아남은 자들도 도주했다.
이 승리는 세계 해전 사상 일대 장관이었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부하들에게 임박한 죽음의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 싸우다 죽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길이 없다는 운명을 그는 부하들에게 명백히 인식시켰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거기에 바탕한 리더십은 “필사측생必死則生 필생측사(必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말로 요약된다.
민주적이고 온정적인 리더십이 현대사회의 만인이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적 리더십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이순신의 생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수의 비위나 맞추어 가면서 표 나오는 길로만 따라가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 중에서 가장 낮은 리더십이다.
12척은 이순신의 자랑이 아니라 이순신의 불운이다. 이순신의 자랑은 12척을 따라나서기가 두려워서 달아나는 부하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엄한 규율로 다스려 적진으로 끌고 나가는 리더십에 있다. 이처럼 국가적 위기 속에서 리더의 자질은 국가 존망의 관건이다.
지금 우리의 미래는 국가 존망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들기도 한다. 북한의 도발과 핵의 위협 기후 변화와 환경의 오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이념의 양극화와 안보의식의 해이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의 실종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등은 나라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위정자들은 나라 걱정보다는 진영 논리와 권력욕에만 집착 어떻게든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언론매체도 정론직필보다는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자기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끌고 가고 있으니 국민은 두 갈레로 갈라지고 갈수록 골은 깊어지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지의民信之矣라 하지 않았던가. 국민을 배부르게 하고 위태로움을 예방하고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1,000 번 이상의 외침과 역사를 유린당한 부끄러운 과거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자政者 정야正也 즉 바른 지도자와 튼튼한 안보 그리고 국민통합이다. 어려운 일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고 말한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문득, 미국 44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취임연설이 떠오른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라는 말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처럼 새롭게 다가온다.

/류인명 시인
전북시인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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