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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 공감, 톡톡! 현충시설! 어디까지 가봤니?]‘송와 박영관선생 생가와 공적비’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10.19 19:12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박영관 선생은 1899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20세가 되던 해에 일제의 만행과 핍박 그리고 수탈을 지켜보며 반드시 국권을 회복해야겠다는 강한 다짐을 하게 됩니다.
1919년 3월 자택에서 예수교 선교사 송주일과 밀회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한 선생은 3월 15일 오전 11시를 기해 고창군 무장 읍내와 동명보통학교에서 학생, 지식층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일어나 일제히 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박영관 선생은 독립선언서를 직접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습니다.
선생은 출동한 왜경에 체포됐으나, 도주에 성공한 후 1923년 3월까지 5년 동안 상해임시정부와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 마련을 위해 동지를 규합하는 등 재기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1925년 대한통의부 독립단원인 조인현은 군자금 모집의 사명을 띠고 권총과 격문 등을 휴대하고 동지 이중산과 함께 군산 지역으로 들어와 장재여관을 경영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지폐를 위조했으며, 폭탄을 제조했습니다.
박영관 선생은 조인현과 만나 이리동척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를 습격하는 거사 계획을 세우고 함께 추진했으나 전라남도의 부호 강 모에게 군자금 지원을 요청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탐지돼 조인현 등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됐습니다. 선생은 1930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2018년 12월 송와 박영관선생 생가와 공적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했습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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