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정치 대표성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불합리한 도의원 정수 산정방식이다. 인구 감소를 이유로 광역의원 수가 줄어드는 구조는 지방의 소멸을 더욱 앞당기는 악순환이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광역의원 정수를 자치구·시·군의 수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겉보기에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론 인구나 생활권·지형 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계적 기준이다. 전북처럼 시군 통합이 이뤄진 지역은 되레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실제로 전북은 강원보다 인구가 22만 명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도의원 수는 오히려 9명 적다. 같은 특별자치도임에도 제도상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남과 비교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는 단순한 수적 차이를 넘어 지역 정치와 행정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제도의 불합리함을 개선하고자, 전북특별자치도의회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광역의원 정수 산정방식 개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정치권과 학계, 중앙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한 목소리를 냈다.
발제를 맡은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인구감소 지역의 대표성을 보완하고 도시·비도시 간 의원 정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기현 전북대 명예교수도 “특별자치도에 걸맞은 정수 확대와 지역 자율성을 보장하는 혼합형 모델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인구 5만 명 미만의 기초자치단체에도 1명의 광역의원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오히려 인구가 적은 지역의 대표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정수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의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지역은 줄어야 하는 ‘제로섬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김슬지 전북도의원은 “정수 조정 범위 20%는 지역마다 적용이 달라 형평성 논란을 낳고 있으며, 정수 하향 조정과 조례에 의한 자율 조정 권한 부여, 독립적인 선거구획정위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제안은 중앙 획일적 결정방식의 폐해를 줄이면서도 실질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으로 주목된다.
또한, 배진석 경상국립대 교수는 소수 정당과 시민 정치세력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며 비례대표 확대와 공천 요건 완화를 통해 지방정치의 다양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정치가 특정 정당의 독점 구조로 고착된다면, 지역 사회의 목소리는 더욱 왜곡될 수 있다.
전북의 경우 농촌·어촌 지역이 많고 지리적으로도 광범위해, 단순 인구 숫자로 정수를 산정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접근이다. 정수가 적으면 의정활동의 질과 감시력, 정책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도농복합형 지역에서의 현장 행정 수요는 의원 1인의 감당 범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지방의 대표성은 줄어드는 현 제도는 반드시 손질돼야 한다. 전북특별법에 관련 특례 조항을 신설하고,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광역의원 정수와 선거구 획정 권한을 지방에 넘기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지방의회가 중심이 되어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정치권과 중앙정부가 이에 응답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원택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는 전북의 미래 정치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지역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전북이 정치 대표성 회복의 출발점에 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