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일 - 이현복
노승이 축서사 마당을 쓸고 있다
싸그락 싸그락 구름 그림자를 쓸어 모은다
빗자루에 끼어 있는 솔잎이 솔잎을 쓸어 모은다
빗자루에 달라붙은 햇살이 햇살을 쓸어 모은다
흰 함박꽃이 무겁게 고개를 들고
소백산 쪽으로 돌아앉은 문수산을 바라본다
구름과 산 너울 경계도 없이 바람 불고 꾀꼬리 운다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그 속에 즐거운 고요가 있지
노승의 눈빛이 엉킨 실타래 한 귀를 꺼내주신다
나무뿌리 속에 바닥의 바닥에 고요가 살지
달 속에 바위 속에 깊은 고요는 보이지 않지!
사람들이 고요를 찾아 나섰다가
지쳐 쓰러진 뒤에야 제 등짝에
고요가 붙어있다는 걸 알게 되지!
노승의 눈빛이 닿자
산방 앞 흰 함박꽃이 마지막 꽃잎을 내려놓는다
<약력>
`서울시인협회. 충북시인협회. 충주문인협회원
수상- 제1회 윤동주 신인상
시집- 누군가의 웃음이 나를 살린다.
<시작노트 >
사월 어느 날이었다
멀리 문수산을 넘어가는 구름 그림자가 축서사를 지나가고 있었다
무여 스님께서 구름 그림자를 쓸고 계셨다 비자루와 햇살과 솔잎이
꽤꼬리 소리에 천지가 아름다웠다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그 곳에 즐거운 고요가 있다는 말씀을 내려주셨다
산방 앞에 흰 함박꽃잎이 고요하게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