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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너 때문에 내가 웃는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1.14 12:40 수정 2026.01.14 12:40

유인봉 시인 / 수필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치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리사랑이 더 크다는 말이겠다. 네 살을 갓 넘어선 큰손주가 별로 웃을 일이 없는 요즈음 나를 웃게 하는 제일 큰 활력소다. 이름도 하랑이다. 손주 이름을 부르면 해 맑은 풀잎에 아침이슬이 또르르 구르는 것 같기도 하고 산 메아리치듯 하랑하랑 여운이 귓전에 남는다.
하랑이를 우리 가정에 선물로 보내신 것은 이른 봄날이었다. 아들 내외가 꿈 날 같은 신혼에 첫 아이를 유산하고 힘들어했던 시절,
태 중에 새 생명을 허락하셨다. 날이 갈수록 외모나 하는 행동이 아들과 너무나도 닮아서 하랑이를 보고 있으면 아들의 아기 시절이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번지고는 했다. 체격이나 키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빠른 편이었으나, 두 돌이 지나서도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서 말을 익히는데 유난히 늦었다. 살짝 걱정스러움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들 내외가 둘째를 출산하면서 부터는 하랑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졌다. 친구가 생기고 재미가 붙으면서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말솜씨가 늘고 표현력이 늘어 갔다. 거기에 이제는 자기의 생각을 담고 판단도 더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누군가어떤일을잘하거나자주하면~박사란말을한다.
세종에 있는 사촌 동생이 소변을 못가려 오줌이 자주 마려우면 엄마에게 쉬~ 쉬~ 라며 도움을 청한다. 이것을 본 하랑이가 쉬박사네~ 쉬박사네~ 라며 놀리고는 한다. 어른들이 웃음보가 터졌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어서~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하랑이를 데리고 시골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랑이에게 시골은 놀잇감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놀이 천국이다. 사과가 탐스럽게 커가고 과수원 풀 섶을 메뚜기나 방아깨비가 팔딱거리고 뛰놀면 그들과 한바탕 친구가 된다. 논이나 물가에는 개구리가 지천이다. 그 중에서 도 작은 청개구리를 좋아한다.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고 하늘이 높아질 때면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공중을 맴돈다. 그중에 더러는 마른 가지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한다. 맨손으로 잡아보겠다고 술래잡기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잠자리채를 사서 손에 들려주었다. 이제는 청개구리도 잡아보고 잠자리도 재빠르게 휘둘러 잡아챈다. 채집 요령을 스스로 터득하는 중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뜻만 존재하는 것 같다.
시골에 농장 일을 하면서 쉴 수 있는 여섯 평 오두막이 하나 있다.
하랑이는 이곳을 시골이라 부른다.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도 그곳은 시골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사는 집과 과수원만 시골이라 우긴다.
우리 내외가 사는 아파트 입구나 아파트 허리쯤에 ‘DESIAN’ (데시앙)이라 아파트 이름이 쓰여 있다. 내가 데시앙이라 하면 하랑이는 아니란다. “할아버지 아니예요” “디이에스아이에이엔 이예요”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때로는 난감할 때도 있다.
지난주에는 어린이집에서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다. 당연히 아들 내외와 하랑이와 하늘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어 보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도보내달라는 것이다. 가족사진을 보냈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하랑이 하는 말이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가족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같이 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족이라 해도 아니라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가족이라며 울고불고해서 전화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다시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을 보내고 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할머니 집에 와서 종종 자고 가는 것이 한 가족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여간 신통방통할 일이고 기특하게 사랑스러운 일이다.
요즘에는 눈치가 팔 단이다. 할아버지가 하랑이! 누구 강아지? 하면 “할아버지 강아지”라 하고, 할머니가 누구 강아지? 하면 “할머니 강아지”라 하고, 우리 내외가 누구 강아지?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강아지” 하며 생각과 판단을 더 해 답을 한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함께 하는 잠자리를 좋아한다.
아마도 동생에 빼앗긴 엄마 아빠의 소홀해진 사랑의 빈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오롯이 느껴보는 것이리라는 짐작을 해 본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면 응당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하랑이는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 내외에게 껌딱지가 되어 버린 손주가 있어 행복하다.
아내가 가끔 손주 볼을 꼬집으며 ‘너 때문에 내가 웃는다’ 하며 내리 사랑을 한껏 보여 준다. 내년쯤에는 하랑이 손에 족대를 들려 시골 냇가에 가서 버들치 잡는 재미를 즐겨 볼 생각이다. 너 때문에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진다 해도 불평 하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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