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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맹꽁이 소나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4.09 14:05 수정 2026.04.09 02:05

형효순 수필가

모내기철 적당하게 내려주는 비는 농부에게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이렇게 가뭄이 계속 되면 그날이 생각난다.

모내기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하는데 천수답인 성적굴 산 아래 논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냇물이 바닥을 보일 때 쯤 더는 비를 기다리지 못해 결국 냇가웅덩이에 양수기를 설치하고 논과 가까운 산 중턱에 양수기를 한 대 더 설치하여 물을 품어 올리기 시작했다. 웅덩이에서는 물이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웅덩이 바닥이 보이면 모터를 끄고 물이 고이기를 기다려야 한다. 거기다 산 밑에 설치된 두 번째 양수기도 같이 봐줘야 하는 고된 작업 때문에 아예 양수기 옆에 솔가지로 얼기설기 텐트를 치고 우리 부부는 밤을 보내야 했다.
성적굴 논은 두마지기가 아홉다랑지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이쪽 산에서 저쪽 산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돌아보면 삿갓 밑에도 한 다랑지가 있다고 할 만큼 조그만 다랑지도 있었다. 산 밑인지라 논두렁은 겨우내 들쥐와 두더지가 구멍을 뚫어 아래 논으로 물이 새기가 일쑤였다. 모내기철에 물은 아재비 삼촌도 농사 다 지어 놓고 따지자고 할 만큼 귀한 생명의 젖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피 같은 물이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남의 논으로 빠져나가게 놔 둘 수가 없었다.
밤이지만 논두렁을 붙여야 했다. 물길을 앞 방천으로 끌어와 마른 흙을 잘게 부수고 흙이 물에 불면 발로 꼭꼭 밟아 손으로 여인의 입술보다 더 도톰하고 예쁘게 붙여야 아버님의 순찰에 합격을 한다. 사실 아홉다랑지 긴 논둑에서 콩나물 콩이 한 가마씩 나오기 때문에 건성으로 만들 수도 없다. 작대기에 손 전등불을 달아놓고 이왕 하는 밤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건너 조그만 호숫가에~ 맹꽁~ 개구리노총각이 살았는데~ 소쩍~ 사십이 다되도록 장가를 못가~부엉~ 안간 건지 못간 건지 나도 몰라~ 맹꽁~ 소쩍~ 부엉~몰라~”
세상에 이런 하모니는 없지 않을까 신까지 났다. 그 뿐만 아니다. 전등불로 날아드는 불나방들과 반딧불들의 안무까지.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소나타 오직 나만의 독무대, 아름다운 밤의 교향곡이 펼쳐지니 피곤하지 않다고, 혼자 있어도 무섭지도 않다고 남편에게 걱정 말고 모터나 잘 보라고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게 날이 밝아 오고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 날 것 같아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거꾸로 엎드려 힘을 가하는 순간 맞은 편 오롱굴 산 소나무 사이로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가랑이 밑으로 들어온 붉은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자 머리가 빙그르 돌고 정신이 어질해졌다. 그리고 그대로 아래 물 논으로 뒹굴고 말았다. 실로 관객이 없어 아쉽기 그지없는 마지막 무대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 밤새 나와 호흡을 맞추던 소쩍새와 부엉이와 별빛은 사라졌지만 맹꽁이들은 여전히 내 모습을 보고 와글와글 박장대소를 하는지 아님 힘내라고 응원을 하는지 맹꽁 맹꽁~
그렇게 화려한 밤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관개 수로가 좋아져 그토록 힘들게 모내기를 하지 않는다. 가끔은 뜨거웠던 삼십대 젊음과 맹꽁이와 소쩍새, 그리고 부엉이까지 그립다. 젊음이 늘 아프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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