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세계 경제가 중동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시스템 밖에서 일어나 경제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외생 변수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2019년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 위축은 외생적 경제 위기였다. 이에 반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내생적 경제 위기였다. 2026년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 위축은 당연히 외생적 경제 위기다.
왜 경제 위기라 하는가.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 경제 기구들은 2025년 약 3퍼센트였던 세계 경제 성장률이 2026년에는 1퍼센트 근방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필자는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에 교란을 가져온 중동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동 상황을 들여다보자. 중동의 지정학적 구도와 역학이 큰 변화를 겪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변화가 그보다 훨씬 큰 범위의 국제 정치 질서 변화의 일부임도 자명하다. 변화가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큰 요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인 행태인 것은 이제 누구나 공감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트럼프와 그 측근들마저도 여기에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하도 엉뚱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고 앞으로 몇십 년간 국제사회의 행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큰 일들이다 보니,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을 정리해서 이해하고 앞날을 생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 중동, 동아시아를 막론하고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이 와중에도 당장 행동해야 하고 지도자들은 이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좌우지간 필요한 행동을 취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 논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역사의 진행을 우연의 연속으로 보는 관점도 있고 필연적 과정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우연적 관점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더 짧았더라면 세계사의 행로가 바뀌었을 것이다”라고 한 블레즈 파스칼의 생각도 농담으로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반면 필연적 관점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냉전 질서,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의 초강대국 중심 질서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과히 틀린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변화는 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세운 사람들이 별로 없다. 준비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트럼프가 구질서를 흔들어 놓은 상황에서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시기이기에 각국 지도자들의 판단과 결단이 더욱 중요하다. 준비된 지도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누가 제대로 판단하고 움직이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지도자들의 공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루어질 수 있다.
문제는 경제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도, 집권 세력의 정치적 안정성도 경제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정치와 경제는 얽혀 있다. 경제 위축은 트럼프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고,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와 공화당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약해진 리더십이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경제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동안 세계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 투자가 트럼프의 불안정한 행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해 왔다. 그러나 높은 관세와 전쟁으로 인한 교역 감소에서 오는 부정적 효과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필자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리라고 본다.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란과 미국 모두 지친 상태에서 확성기만 틀고 떠들어 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세계 경제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한국 경제는 어떤 상황인가.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2025년에 약 1퍼센트였는데, 2026년에는 2퍼센트 근방으로 오를 것으로 대부분 예측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인공지능 투자로 버티고 있듯이 한국 경제는 반도체 호황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면 현재의 성장률 예측은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
곧 한국은행 총재가 바뀐다. 신현송 신임 총재 지명자는 세계 정상급의 금융 경제학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배경이 되는 금융 산업의 변화를 가장 잘 읽고 있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다. 특히 예금을 자금원으로 대출하는 전통적 상업은행에서, 증권 발행자와 투자자 사이에서 매매를 중개하는 증권회사로 중심축이 이동한 금융 중개 시장의 변화를 다수의 논문을 통해 설명하고 분석했다.
또 그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어떻게 금융 위기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금융 위기가 시장 거래자들의 쏠림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보는 점에서 필자의 라이스대학교 동료 교수였던 잔 브라이언트 등의 대량 인출 사태(bank run)에 대한 연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신현송 총재 지명자가 스티븐 모리스와 함께 쓴 외환 공격에 대한 논문에서는 펀더멘털의 악화가 거래자 쏠림을 촉발한다고 본다.
필자는 금융 위기를 거시경제의 장부상 파산 상태로 설명하는 입장이라서 거래자 쏠림을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보지만, 펀더멘털을 중요시하는 점에서는 생각이 같은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크게 보면 두 가지가 있다.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다. 신현송 총재 지명자는 금융 안정성을 중시하는 전문가로서 금융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금융 위기의 발생을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의 중앙은행 역할인 물가 안정 면에서는 어떨까. 물가 안정을 위한 도구는 이자율이다. 물가 안정 정책은 실질적으로는 이자율 정책이다. 그런데 이자율은 소비자 물가나 생산자 물가보다 훨씬 더 큰 범위의 경제 변수들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경제 성장률과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잘못 관리된 이자율은 또한 금융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자율 조정은 매우 중요하고 어렵다.
이자율 정책의 성공은 단기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재임 중 훌륭한 연준 의장으로 평가받았지만, 퇴임 뒤에는 그의 느슨한 이자율 정책이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현송 총재 지명자는 이자율 정책 면에서 미지수다. 일부 매체에 그가 매파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금융 경제학자로서 그의 토대는 탄탄하고 견해도 잘 알려져 있지만, 이자율 정책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경제의 전반적 흐름, 특히 거시경제 변수들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실용적 균형 감각에 따른 의사결정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중앙은행 수장의 일을 제대로 하는 데는 현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제일 중요하다. 모든 결정은 자료를 토대로(data-driven) 해야 한다. 업데이트된 통계 자료를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론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경제 성장기에 한국 경제가 잘 되고 있는지 알려면 세 가지 변수를 보면 됐다. 수출, 유가, 쌀 작황이었다.
2026년 한국 경제에서 주목해야 되는 중요한 요인들은 외생 변수인 중동 사태와 내생 변수인 한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성과다. 정치권에서 중시하는 부동산 가격은 잠시 잊어도 된다. 한국은행 총재는 정치를 멀리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건설 경기의 위축은 중요한 문제지만, 한국은행 총재보다 경제부총리가 걱정해야 될 일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지명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자율 정책을 잘 관리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