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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요일별 특집

[온고을문학산책] 미나리 그리고 미나리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1.03.31 19:16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영화 「미나리」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상을 기점으로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며 전 세계 75관왕을 기록해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고있는 독립영화같은 상업영화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가족의 절망과 희망, 꿈과 행복, 불행과 고난을 이어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이민자의 개척 서사와 묵직한 메시지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도 미나리 이야기가 있다. 나의 미나리 이야기는 영화에 비하면 너무 가벼워서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어릴 적 우리집엔 조그만 자투리땅에 물을 대서 습지에 미나리를 심어 생활하수를 처리하면서 텃밭으로 사용하던 미나리꽝이 있었다. 친정엄마는 미나리나물을 자주 밥상에 올렸고 나는 미나리 향이 너무 진해서 코를 막고 먹어보려 애쓰던 생각이 난다. 그 지독한 냄새를 참으며 엄마는 미나리나물을 잘도 드셨다. 어느 땐 그 고약한 나물을 매일 먹는 엄마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엄마는 어쩜 미나리 향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훗날 내가 어른이 되어 향에 끌려 미나리를 먹게 됐을 때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미나리는 나에게 지긋지긋한 나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결혼 전까지는.
남편은 나물 종류를 좋아했다. 육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나물 반찬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유독 미나리를 좋아했는데 일상이 바쁜 나로선 손이 많이 가는 그 까다로운 미나리를 손질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예전 미나리는 거머리도 많았고 지저분해서 아무리 씻어도 깨끗하지 않았다. 미나리를 다듬다가 거머리라도 나오면 질겁을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건 거의 테러 수준이었다. 이런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남편은 봄이 되면 한 끼도 미나리 무침을 거르지 않았다. 이른 봄 미나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지나가다 미나리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냥 지나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고, 사자니 그 과정이 너무 싫었다. 그 지겨운 미나리나물 반찬 과정을 생각하면 싫은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진저리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봄은 미나리 딜레마로 시작되는 듯했다.
그즈음 난 미나리나물때문에 거의 히스테리가 생길 지경이었다. 남에게 해주는 사람도 있는데 난 왜 그렇게 그걸 못 견뎌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날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나리 나물은 단지 남편이 좋아하던 반찬 이었을 뿐인데 나는 거창하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기주의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나이 먹은 지금도 살까 말까 미나리 스트레스는 여전한데 봄만 되면 그래도 내 장바구니에 습관처럼 미나리가 가득하다. 남편 좋아하는 반찬 해주는 게 측은지심인 듯 혀를 차면서도 신경질은 더이상 안 난다. 남편은 주방을 들락거리며 간도 봐준다. 이즈막 남편은 마트에서 미나리를 사다가 다듬어서 은가락지같이 깨끗하게 씻어 바구니에 산더미처럼 쌓아놓는다. 난 삶아서 무치기만 하면 된다. 젊어서 이렇게 해줬으면 내 미나리 트라우마는 없지 않았을까.
그 시절은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해서 서로를 섭섭하게했던 것 같다. 그 오랜 세월동안 먹어온 미나리가 물리지도 않는지 남편은 미나리나물을 여전히 탐한다. 영화 「미나리」주인공 <순자>가 외쳤던 ‘원더풀 미나리’처럼 남편도 마음 속으로 ‘원더풀 미나리’를 외치며 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화경
전주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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