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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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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초등학교 교정에 하얀 목련꽃이 외롭다.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도 운동장에서 시끌벅적 뛰놀던 아이들도 텅 빈 교실, 조용한 운동장엔 아이들이 없다.
코로나19가 가둬버렸다. 집 콕에 갇혀있는 일상은 기약도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교실도 운동장도 강당도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 학생들도 없다.
봄 잔치 꽃 잔치를 열어야 하는데 교정의 꽃과 나무들도 펜데믹에 모두 숨죽이고 서 있다. 평범한 일상이 멈췄다. 집 콕에서 만나는 정지된 현실이 믿기 어렵다. 사회적 거리두기, 말할 땐 마스크 쓰기, 손 잘 씻기 등 생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요한 교정, 모든 게 멈춘 상태로 초등학교는 외로이 서있다. 교정의 목련꽃은 함박웃음 가득 담아 봄 마중 달려왔다. 함께 꽃놀이 가자. 신나게 외치며 달려 왔다.
하지만 온통 고요한 세상이다. 봄이 놀란다. 달라진 세상을 공감하며 밤새 눈물 비 머금은 꽃잎들, 목련꽃나무 아래 하얗게 쏟아 놓았다. 밤사이 많이도 울었나보다.
흐드러진 꽃잎들이 소복이 눈처럼 쌓였다. 코로나19에 갇혀 버린 일상이 정지된 상태로 서있는 세상을 보며 활짝 펴야할 꽃망울이 망서림 움추림에 갈등하며 눈치를 본다.
봄이 조용히 걸어왔다. 사람들은 따뜻한 봄이 보고 싶다. 화사한 봄꽃이 보고 싶다. 참아야만 한다기에 더 그립다. 그리워도 그리워해야만 한다. 봄이 어디만큼 왔는지 궁금한데도 답을 알 수 없는 시국이라서 사람들은 잠자코 있다.
갇혀있는 일상이 가엽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보다도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 더 큰 위로라는 걸 알기에 봄꽃도 외로운 일상에 함께 서 있다. 봄이 왔다. 꽃바구니에 꽃을 가득 담아 봄 동산으로 소풍 나온 봄. 꽃망울에 눈물 머금고 펜데믹 시대를 건너고 있다. 우리 아파트 담장 너머 초등학교를 바라보던 작년 봄 이야기이다.
올 봄은 예방접종으로 시작하는 봄이다. 희망이다. 깜깜하고 우울한 그때를 벗어나고 있다. 올 가을이면 면역력이 생기고 마스크를 벗어 버릴 날을 기대하며 마음에 봄빛이 찾아 든다. 소망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이란 고비고비 산마루를 넘고 구비치는 강물을 건너며 넘실대는 파도를 타며 용감하게 살아내는 순례자. 내공을 기르고 힘을 키워 마침내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코로나19로 요동치는 한 복판에 봄이 왔다. 꽃 짐 가득 싣고 위로의 봄이 왔다. 함께 울어주던 봄, 함께 비를 맞아주던 봄, 이젠 힘차고 생기발랄하게 봄꽃을 피우며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개나리 산수유 목련꽃 벚꽃 설류화 조팝나무 꽃 천변 길가에서 아파트 정원에서 다투어 분주한 봄이 열리고 있다.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있겠지. 들로 산으로 꽃놀이 가는 상상에 올봄은 즐겁다.
코로나를 통해 평범한 일상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많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기회여서 한편 감사하다. 어느 날 꽃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힘내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이 또한 지나가는 고난에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 줄 테니 꿈으로 가득한 설레이는 삶을 소망하며 살라한다.
나는 봄에 태어난 사람. 그래서 봄이 좋다. 봄은 꽃이 많아서 좋다. 내 마음의 정원에는 봄을 닮아 항상 꽃이 가득하다. 어느 날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 준 꽃을 통해 내 마음이 꽃밭이라는 걸 알게 되어 절망 가운데에서도 꿈을 꿀 수 있었다.
우분투 (ubuntu)라는 말을 좋아한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당신이 행복하면 나는 몇 배나 더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 맺기를 하며 봄날을 살아가면 좋겠다.
/서을지
한국예술문화 화예명인
한국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 숲 대표
본지 논설위원(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