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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눈]풀잎은 누워서도 흔들린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1.04.04 18:03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자연의 생명력은 경이롭다. 봄이 오자 죽은 듯이 겨울을 지낸 삼라만상이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아름다운 꽃과 연둣빛 작설雀舌을 내밀며 찬란한 봄의 햇살과 함께 그 위대한 장정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도처에서 가냘프게 보이는 풀잎과 들꽃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번쩍거리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잔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나 들꽃들을 바라볼 때면 어쩐지 애련한 느낌을 버릴 수 없는 강렬한 연민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소리로 사람들의 일상과 바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하지만 가까이 귀를 대면 은밀한 곳에 감춰두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소곤대기 시작한다.
풀잎은 거센 바람이 불면 자신을 낮게 낮추어 바람과 맞서지 아니한다. 그들의 청순한 영혼과 순수는 흉내 낼 수 없는 맛과 향기를 내뿜는다.
그는 웃자라지 않는다. 욕심내지 않고 꼭 자랄 만큼만 자란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잔바람에 살랑대는 풀잎을 바라볼 때면 숱한 신산을 겪으며 누년을 버텨온 얼굴이 이렇게 싱싱한 모습으로 웃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울음을 드러내지 않고 비바람을 견뎌온 강인한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돌 틈을 비집고 올라온 연약한 들풀. 바람 불면 누워서 흔들리고 비가 오면 엎디어서 울음을 삼키며 향기로운 속살거림을 지켜내는 초록들은 자유로움으로 다가와 팔십을 바라보는 필자의 인생을 겸손하게 만든다.
‘흔들리는 것만이/유일한 생존의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세월은 그렇게 가르쳐 왔을 테지만/비바람 몰아칠 땐 활처럼 휘어지고/물결 가파를 때 목쉰 울음 일렁이며/바람이 지나고 이슬방울 맺힐 때/풀잎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태양을 향하여 허리를 곧추세운다’(풀잎은 누워서도 흔들린다/이내빈 시). 풀잎은 늘 누워서 흔들리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목쉰 울음으로 날을 세우기도 하면서 그를 위협하는 자연과의 일전도 불사한다.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바람의 향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풀잎은 절대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바람의 향기를 사랑하면서도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 풀잎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한 포기의 풀잎을 통하여, 끈질긴 생명력으로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자연에서 겸손과 의기를 배우게 된다.
흔들리며 겸손을 실천하고 잎 날을 세우며 저항하는 풀잎을 통하여 우리는 인생을 깨닫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천금의 지혜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내빈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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