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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시와 영통(靈通)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1.04.04 18:06 수정 0000.00.00 00:00

이처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초월적 상상은
단생적인 인간의
유한성을
자연의 영원성과
결합시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고자
하는 절대지향의
전일성이라 하겠다

ⓒ e-전라매일
노자 『도덕경』에 ‘도(道)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고’ 그것을 그것이라 이름 붙여 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그것의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시(詩)의 언어는 ‘명(名)’을 전달하는 ‘기호의 언어’가 아니라, 무어라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무명(無名)의 언어, 곧 그것의 근원인 ‘존재의 언어’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진리 그 자체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일상의 언어를 버리고 존재의 언어를 선택하여 그것과 인간의 본성이 하나로 일치되는 시어를 택하고자 고심하게 된다.
시가 절대성을 지향하고 있기에 시의 언어를 ‘신(神)을 닮은 인간의 눈’ 혹은 ‘샤먼의 언어’라고도 한다.
서정주의 「해일」, 「신부」 등도 자연과 인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무당처럼 신이한 세계가 있다. “서정시의 원천은 접신 직전의 도취 상태다.∽이 때의 신어(神語)는 미당 자신의 퍼소나이면서 동시에 미당과의 내적 상관물로서 현실과 이상 사이를 긴밀하게 왕래하는 투영물이 된다.”(박형준 시인)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 밭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생략∼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생략∼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생략∼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 집 마당에 몰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서정주,「해일」 부분

바다물이 할머니를 만나러 마당으로 넘쳐 들어오는 장면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나가 되어 만나는 영통(靈通)의 세계, 곧 접신의 공간이다.
이처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초월적 상상은 단생적인 인간의 유한성을 자연의 영원성과 결합시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절대지향의 전일성이라 하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삼라만상이 어떤 보이지 않는 령의 힘에 의하여 운행되는 것으로 믿었기에, 그 초월적 힘을 인간의 편으로 유도함으로써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벽길 어머니가 물동이를 이고 간다/ 동이 위 바가지가 당글당글 즐거웁다 / 동이 위 바가지 따라 새벽달이 웃고 간다 //∼생략∼ 실구름 목에 감고 새벽달이 웃고 간다.
-박항식, 「새벽달」 일부

시는 궁극적으로 신(神) 집힌 자의 언어다. 물동이 위에서 새벽달이 ‘실구룸을 목에 감고’ ‘웃고 가’는 초월적 직관도 시적 대상에 대한 정령 감각이다. 박항식의 시는 애니미즘적 정령감각으로 신령스런 정기를 더하고 있다. 신이 사라진 오늘의 문명시대에 종교의식을 대신하여 신과 접할 수 있는 존재가 시이다. 때문에 시는 존재의 내면에 깃든 신성의 뿌리를 향한 모색의 궤적이라 하겠다.

고요한 때에만 /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 문 밖에서 조용히 / 날 부르는 그림자가 있어
긴 밤을/ 뒤척이곤 한다.∼생략∼내 가는 곳마다 / 차가운 그림자 되어 / 문 밖에서 / 서성이다 돌아가는 / 알 수 없는 종(鍾)의 울림이여 // 우리는 / 이 밤도 너무 멀리 / 헤어져 있구나.
-김동수, 「그림자의 노래」 부분

‘문 밖에서 조용히/ 날 부르는 그림자가 있어; ‘긴 밤을 뒤척이곤’ 한다‘ 순간, 시인은 ‘종의 울림’을 듣게 된다. 이게 바로 ‘또 하나의 그’, 곧 그의 신성과 접합된 영지적(靈知的) 순간이다.
시인은 때때로 이러한 초월적 영성의 감지를 통해 존재의 내면에 깃든 신성의 뿌리를 순례하면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사)전라정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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