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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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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를 때마다 길가나 쉼터에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애국자가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자료를 만들어서 등산객들이 지날 때마다 읽고, 배우고, 실천하도록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그때 사용된 철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유기견의 목걸이처럼 나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지워지지 않을 혹처럼 큰 공덕을 새겨 놓는다. 신중치 못한 애국자들이 만든 작품이다.
매년 3·1절과 광복절이 가까워지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운동이 친일파 척결 운동이다. 그때만 되면 온 나라가 시끄럽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에는 참가하겠다며 죽창을 들고 나서는 혈기왕성한 애국자들이 많다. 그 중에는 떳떳하지 못한 자기의 과거 행적을 먹고살기 위한 행위였다고 변명하는 한심한 애국자도 있다. ‘애국’이란 단어도 편의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표현이니 듣는 이의 마음이 편치 않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화산공원을 걷다가 길가의 나무에 무언가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뜨이었다.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려고 매달아 놓은 이름표일 거라 생각하며 다가갔다. 아뿔싸! 화산공원을 걷는 사람 중에도 애국자가 있었다. 그 표찰에는 ‘우리 나무 보호. 아카시 퇴치’라고 쓰여 있었다. 게다가 쉽게 훼손되지 않도록 철사로 단단히 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매달려 있는 나무는 아카시나무가 아니라 귀한 대팻집나무였다. 아카시나무와 대팻집나무도 식별하지 못하는 엉터리 애국자의 소행이었다.
사람에 대한 친일 논쟁 못지않게 산에 있는 나무에 대한 친일 논쟁도 자주 일어난다. 위에서 아카시나무를 퇴치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실 여부의 확인도 없이 원산지가 일본이라며 벌이는 친일 논쟁이어서 몹시 씁쓸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대를 받고 있는 나무 가운데 하나가 아카시나무다. 왜놈들이 우리 산을 망가뜨리려고 심은 나무이고, 묘지 속으로 벋어 들어간 아카시나무의 뿌리가 조상들의 시신을 훼손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아카시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이 벋지 못한다. 기는줄기처럼 얕게 옆으로 벋는다. 따라서 묘지 안에 있는 시신의 훼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다만, 번식력이 강하고 큰 가지가 많아 묘지의 잔디에 미치는 영향은 큰 편이다.
한국인들이 혐오하는 아카시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왔지만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북아메리카이다. 따라서 황폐했던 우리의 산림을 비옥하고 푸르게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아카시나무는 토착 왜구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꿀의 대부분이 아카시나무의 꿀이다. 그런 고마운 나무를 일본 원산이라고 폄하하면서 퇴치운동을 벌이자고 하는 행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되어 친일 혐의에서 벗어난 아카시나무가 하얀 꽃을 활짝 피우면, 마스크를 벗고, 〈과수원 길〉 노래를 부르며, 코로나로 막힌 코가 휑하고 뚫릴 때까지 그 꽃향기 속으로 힘차게 걷고 싶다.
/이희근
전주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