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정치 정치/군정

1500년 전 삼국 시대 ‘금동신발’ 보물 지정

박동현 기자 입력 2021.04.21 18:29 수정 0000.00.00 00:00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국가문화재 지정은 처음

문화재청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비롯해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등 총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 중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 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喪葬禮)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됐으며,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보물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고창 봉덕리에 자리한 4기의 대형 분구묘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여기에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된 것이다. 이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장례 때 의례용으로 사용된 신발로 백제 시대의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이다.
금동신발의 전체 형태를 보면, 발목깃을 갖춰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 쌍조문, 괴수,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됐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백제 시대 고분에서 나온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다.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되어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을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보물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제 시대 의례용 금동신발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추어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자,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등 3건에 대해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주)전라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