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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滿空 : 1871~1946) 스님은 여산 송(宋)씨로 속명는 도암, 법호가 만공(滿空)이다. 1871년(고종 8) 전북 태인에서 출생, 13세에 출가한 한국 현대불교의 대선사다.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에 반대하여 조선 불교를 지키며 현대 한국 불교계에 큰 법맥(法脈)인 간화선(看話禪)의 수행과 보급에 노력하였다. 스님은 법력이 높아 사후, 제자들에 의해 《만공어록(滿空語錄)》이라는 일화집을 남겼는데 그 중에 <만공의 거문고 소리>가 있다.
스님은 거문고를 즐겨 탔다. 어느 날 한 젊은 스님이 “스님 거문고를 타면 마음이 즐거워집니까, 슬퍼집니까? 그러자 스님은 찻잔의 물을 가리키며 이 차는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야 깨끗한 것이지요.” “그럼 내가 마신 찻잔의 물이 나중에 오줌으로 나올 것인데, 그것은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야 더러운 것이지요. 그러자 스님은 그 젊은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오줌이 땅에 떨어져 도라지가 빨아 먹어 꽃을 피웠다. 그럼 그 꽃은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 꽃은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은 “너는 물 한 잔을 가지고도 깨끗했다 더러웠다 마음대로 바꾸는구나.” “보아라. 물은 원래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것이 찻잔에 담기면 깨끗해지고 오물통에 담기면 더러워진다. 거문고 가락도 슬픈 사람이 들으면 슬프게 들리고, 기쁜 사람이 들으면 기쁘게 들리는 것이니, 기쁘고 슬픈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진리는 하나다. 좋고 나쁘고, 예쁘고 밉고를 분별하여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스님은 존재의 본체, 곧 개인의 참된 본질이 우주 만물의 본체와 하나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불교의 진수는 스스로 마음을 깨닫는데 있다. 인간의 가치 있는 삶도 수행을 통하여 차별이나 분별의 관념에서 벗어나 편벽됨이 사라져야 자유롭게 된다. 이렇게 분별에서 벗어나면, 그가 바로 부처라 하였다.
또 하나의 일화에 <딱다구리와 구멍>이 있다. 대한제국 찾아와서 법문을 요청하자, 만공은 진성 사미를 불러다가 속세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였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노골적인 성관계를 묘사한 것이었다. 궁녀들은 노래를 듣고 당황하였다. 그러나 만공은 차분하게, 바로 이 노래 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오. 원래 참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중생은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지만 누구나 뚫린 부처씨앗이라는 것을 모르고 집착과 욕망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참으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오.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법문이 것이오.” 이에 궁녀들은 크게 감탄하며 만공에게 감사를 표했고, 이후 궁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순정효황후 윤씨도 감동해서 진성 스님을 왕궁으로 불러다가 노래를 듣기도 했다.
참선을 위해서는 행자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환경과 배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깨달음으로 수도(修道)에 적절한 도량과 좋은 도반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스승을 수행의 주요 조건’으로 꼽았다. 만공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을 한번 살펴보자.
공산이기고금외(空⼭理氣古今外)-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雲淸⾵⾃去來)-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데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무슨 일로 달은 서천을 넘었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 새벽에 닭우니 밝은 해가 솟는구나 - 만공 스님, 「오도송」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사)전라정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