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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맛있는 글을 위해, 天衣無縫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1.06.07 18:48 수정 0000.00.00 00:00

비록 사료가 풍부
하나 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간략하지만
필요한 것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담긴
뜻이 깊어야
좋은 글 맛있는
문장이 된다.

ⓒ e-전라매일
“작품 속 한 여인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무척이나 많은 고심을 하였다. 쓰다가 버리고 쓰다가 버리고의 연속이었다. 결국 ‘내다 버려라’의 한 문장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썼다. 너무 좋았다. 원고지 100장을 쓴 것보다 더 나았다.” ‘칼의 노래(2001)’를 출간했던 김훈의 회고담이다.
맛있는 글을 위한 작가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글쓴이의 아픔과 고통은 혼이 되고 그것은 글의 표정이 되어 감동과 향기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마치 수확한 곡식마다 농부의 땀과 눈물이 박혀있듯이(粒粒皆辛苦), 작가의 혼은 독자에게 감동과 향기로 기억된다. 그 고뇌가 깊고 진할수록 그 울림은 오래도록 멀리까지 전해된다. 어쩌면 작가의 광적 신고(狂的辛苦)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미소’를 위해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꿰맞춘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눈과 코‧이마와 볼‧눈썹과 입술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방향과 각도에서 조합한 다빈치 기법의 결과 마침내 형언키 어려운 신비의 미소가 탄생하였다.
또 조정래는 미국‧일본‧러시아‧중국(미수교국) 등을 수없이 취재 여행하면서 일제 수탈의 사료를 수집하고 땀 흘렸기에 대하소설 ‘아리랑(1995)’을 집필할 수 있었음이 그 문학관에 흔적 되어 남아있다.
만화가 허영만도 ‘식객’이란 작품을 위해 500명 이상의 고수를 만나서 1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촬영하고 그 비법을 메모한 수첩만도 200권 이상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감동을 위해 발로 뛴 흔적이 역력하다.
이처럼 풍부한 재료가 준비된 다음 맛있게 요리하는 언어의 마술사였으면 한다. 논리정연한 구성과 합당한 용어 사용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의 전개 등이 잘 배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나의 언어 수준에 좌우되고, 마침내 감동과 역량이라는 평판이 칭송으로 남는다.
물론 치열한 자기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명연설가였던 처칠도 원래는 혀짧은 소리의 흠이 있었고, 명문장가이기도 했던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 역시 말더듬이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 없이 운명을 극복하였겠는가? 처칠은 철저한 준비와 쉬운 말로 표현하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했고, 데모스테네스 또한 입속에 돌멩이를 넣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발성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세지데이즈의 역사 소설을 여덟 번이나 베껴 쓰는 노력이 있었다.
‘혼불’의 최명희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았다”라고 했고, 바람의 딸 한비야도 “글쓰기는 철공(鐵工)을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과정이다”라고 말하여 그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래선지 니체는 “피로 쓴 글을 좋아한다”라고 했다.
그만큼 감동과 공감을 얻기 위한 철저한 자기희생과 숙성이 중요했음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명문은 거의 다 형편없는 글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부단한 습작 노력은 명문을 만드는 밑거름이었음을 배우게 된다.
그 때문에 김훈은 생이빨이 빠져나가는 산고를 치르며 ‘남한산성(2007)’을 탈고했고, 조정래는 20년 동안 황홀한(?) 글 감옥에 갇혀 탈장 수술까지 받으면서 ‘아리랑(12권)’‧‘한강(10권)’‧‘태백산맥(10권)’을 세상에 선보였다. 유방암 수술 직후임에도 붕대로 가슴을 묶고 장편소설 ‘토지’를 집필했던 박경리, 상 중임에도 출근하여 연기에 몰입했던 탈렌트 이순재와 김희애는 모두 일에 미친 마니아들이었다.
미켈란젤로 사후 그의 화실에서 발견된 종이조각의 ‘그리게 안토니오, 또 그리게 안토니오 그리고 또 그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라는 글귀는 이를 잘 증명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빠뜨릴 수 없는 즐거운 고통은 바로 퇴고(推敲)다. 고요한 밤 달빛 아래 스님이 사립문을 열 때 ’미느냐?(推)‘ ’두드리느냐?(敲)‘로 고심하였던 퇴고다. ‘나 여기 있소!’ ‘나 이런 사람이요!’ ‘내 말 좀 들어보소!’라며 시집보내기 전 예쁘게 꾸미는 마지막 산고다. 옥동자를 보기 위해선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지 않겠니? 김소월도 ‘진달래꽃’을 3년 동안 손질했던 고뇌가 있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갈겨쓴 글/ 또 고치며 마지막이길 바라지만/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신// 거울 보며 지우고 칠하길 반복하는 어울림/ 시집보내기 전 수없이 다듬는 매무새는/ 끝없는 자성과 고민이 필요한 인내다// 관객의 입맛과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생명/ 지나간 나를 읽는 따분함과 재미 없음 대신에/ 마침표 하나에 보름을 고뇌한 헤밍웨이가 되어야 한다// 치열한 갈등 끝에 찾아오는 글의 단단함/ 다듬을수록 빛난 얼굴과 꿰맨 자국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은/ 마침내 꼭 안아주고 싶은 신부가 된다// 그러니 즐거이 맞이해야 하지 않겠니, 퇴고推敲씨!//

사랑한 여인이 죽자 고민 끝에 결국 “내다 버려라!”라고 한 줄 갈겨쓰고는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김훈, 맛있는 감동을 위한 고뇌가 그 해답임을 깨닫게 한다. 비록 사료가 풍부하나 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간략하지만 필요한 것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으면서(豊而不餘一言 約而不失一辭: 唐의 韓愈의 문장), 담긴 뜻이 깊어야(辭簡意深) 좋은 글 맛있는 문장이 된다. 때문에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고뇌, 그것은 늘 나를 만나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양태규
옛글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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