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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公正을 향한 갈망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중심으로 논점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면 공정의 이면에는 비방하고 폄훼가 도사리고 있다. 관념에 따라 형성된 기준은 자신의 가치관과 상대방의 가치관이 양립하여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공격이 오고 간다. 그런 경우 우리 사회는 공정에 대해 매우 예민하고 엄격한 반응을 보인다. 철학적 차원에서 공정은 개인의 가치관은 물론 문화권이나 환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공정하다’와 ‘불공정하다’를 놓고 대립하는 수많은 상황들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사회 계층 간의 대립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중요하다.
요즘의 우리사회를 보면 공정은 없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처음부터 동등한 조건과 기회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S‧K‧Y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집값은 천장을 뚫는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이다. 특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앞에서는 공정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정도다. 배가 고파서 빵 하나 훔친 것은 엄하게 처벌하고, 음주뺑소니나 마약 같은 범죄는 부모의 신분에 따라 유야무야 넘어가는 현실은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없는 자는 죽임을 당하고 가진 자는 살아남는 일이야말로 불공정 자체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편법이 용서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혈연 ‧ 지연 ‧ 학연을 싹둑 잘라내야 된다. 원칙과 룰과 법을 지키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상식이 돼야 한다. 우리는 기회의 균등을 외치치만 빈부로 계급화된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는커녕 미꾸라지 한 마리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된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가난이 죄가 아니듯 부자 또한 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착실히 돈을 벌어 적금 붓고 대출 받아 투자 가치 있는 곳에 집을 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다. 물론 도둑질 하고, 사기 쳐서 돈을 모았다면 그것은 분명한 죄다. 이런 것은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 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러 나라들이 부가 또 다른 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은 부자들이 낸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두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많아야 한다. 안 그러면 월급쟁이들 유리지갑만 거덜 난다.
지구의 자원은 제한되어 있어 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에 참여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공정한 규칙 하에 경쟁이 되어야 한다. 이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실질적 기회 균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나 제도가 없다면 경쟁에서 패배한 다수의 구성원들은 승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신과 갈등이 팽배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정이 통하는 사회는 국민들의 소망이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법 제정 보다는 누구나 법과 질서에 승복할 수 있는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이 줄어들고, 미래를 약속 받을 수 있다. 공정 회복에는 지성인들은 물론 기득권층의 자성과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결국 사회가 불공정하면 각종 비리가 판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진다. 선진국일수록 공정이란 가치에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야흐로 ‘공정’이란 말이 시대정신으로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대단히 고무적이다.
/정성수
전주비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