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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에게 위안 받아 본 적 있나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된 가구점 광고 카피다. 가구에게 위안을 받을 수도 있는 걸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난 가구에게 위안받아 본 적이 있다. 누구든 막연히 생각은 했겠지만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광고 카피를 제안한 카피라이터에게 경의를 표한다. 얼마 전 독일식 책상 하나를 샀다. 실용성도 없어 보이고 값도 제법 나가는, 그렇다고 꼭 필요한 건 더욱 아닌 가구였다.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책상이긴 했지만 너무 오래된 소망이라 지금 책상을 산다는 게 왠지 사치처럼 느껴졌다. 독일식 책상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어찌 보면 나의 주체 할수 없는 허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나만을 위해 독일식 책상을 샀다.
책상이 배달되던 날, 아침부터 설렜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것처럼 쓸고 닦고 시계를 자주 봤다. 책상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놓였다. 그린 듯이 잘 어울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책상이 있었던 것처럼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가구점에선 미처 보지 못했던 자잘한 꽃과 클래식한 문양들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어 처음 본 그날 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뭘 사고 싶을 때가 좋을 때라고 한다. 사고 싶은 맘이 있다는 건 삶의 의욕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듯 기운이 났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고 작은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밤늦도록 점자를 읽듯 책상을 어루만졌다. 집을 나설 땐 책상에게 생명이 있기라도 한 듯 눈인사를 보내며 오래오래 바라봤다. 일과 중 문득문득 책상이 생각나면 흐뭇해져 웃음이 깨물렸다. 그러다가 한순간 책상이 없어질 것 같아 마음이 다급했다. 그리운 사람처럼 어서 보고 싶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난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들떠 지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문득 불안하고, 옆에 있으면 행복해지는, 이런 감정이 사랑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샤걀의 그림들이 들어있는 달력, 안나수이 향수, 이중섭 그림이 조각돼 있는 명함케이스, 몇장의 연하장, 놋쇠 장식의 촛대, 그리고 은가락지. 독일식 책상엔 이런 것들이 있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그것들은 저마다 따뜻하고 행복한 사연과 추억들을 가지고 있어 더욱 애착이 간다. 때때로 몸이 무겁고 우울할 때 이 모든 것들을 다 꺼내놓고, 만지작거리며 그것에 얽힌 이야기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혹은 여행지에서의 고생스러웠던 기억마저 달콤해져 진저리를 친다. 그럴 땐, 근육 이완제나 피로 회복제를 먹었을 때보다 더 빨리 몸이 가뿐해지고, 어떤 말보다, 위안이 되는 걸 느낀다.
아주 오래전에 베드 트레이를 산 적이있다. 침대용 다과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이것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커피라도 침대에서 마셔 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누군가가 차려다 주지 않으면 참 불편한 상이 베드 트레이라는 것이다. 그걸 산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침대에서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게 나의 비극이다. 위안받으려고 샀던 베드 트레이 때문에 상처만 받은 꼴이었다. 때때로 난 내 허영의 바다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댄다. 내가 만약 베드 트레이를 사지 않았다면 상처받을 일 없이 판타지로 남아 계속 날 설레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쨋든 베드 트레이가 상처였다면 독일식 책상은 평화이자 위안이다.
/최화경
전주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