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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진안군 주천면 출신
진안군 북서부에 있는 주천면(朱川面). 운장산이 여러 면의 경계를 이루는 주천면엔 완주군 운주면과 동상면, 충남 금산군의 남이면이 이웃한다.
운장산에서 발원한 금강의 상류 주자천(朱子川)이 흐르는 주천면엔 천변의 계곡과 바위로 된 산지가 많다. 운일암, 반일암 등 유명한 관광지도 있다.
진안과 금산 사이의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주천면엔 대불리, 무릉리, 신양리, 용덕리, 운봉리, 주양리 등 여러 마을들이 있다.
구봉산(九峰山). 주천면 운봉리와 정천면 갈용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1,002m의 암석산이다. 9개의 암석으로 형성된 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구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장군봉이다.
구봉산 아래 정천 방향으로 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황사와 갈거 계곡에 운장산 자연 휴양림이 있다. 동쪽으로 용담댐을 조망할 수 있다. 장군봉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봉우리의 모습이 막 피어오르는 연꽃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일명 ‘연꽃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산이 험해서 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없었으나 진안군에서봉우리 능선 통과가 어려운 구간에 구름다리도 놓았다.
재경주천면민회 제12대 고방원 회장은 1941년생이다. 운봉리 출신이다. 경찰공무원을 그만둔 이후, 지금까지 109차례 구봉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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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때 구봉산에서 전사한 아버지
그 옛날 구봉산엔 공비들이 많았다. 운장산도 그랬다.
고방원 회장의 선친은 경찰이었다. 6.25 한국전쟁 때, 구봉산 공비들과 싸우다 전사했다. 이런 사연으로 고 회장은 보훈가족이다.
◆ 주천초등학교 2학년 때, 6·25 발발
고방원 회장은 주천초등학교 2학년 때, 6.25한국전쟁을 만났다. 전쟁 통에 학교가 없어졌다. 그래서 금산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금산의 초등학교 6학년 때, 다시 주천초등학교로 전학했다. 6·25한국전쟁 때 허물어졌던 주천초등학교가 복구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는 주천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정규중학교가 아닌 주천고등공민학교 3회 졸업생이다. 정세균 전 총리도 이 학교 출신이다. 고등학교는 금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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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주천면 운봉교회에서 신앙생활 시작
주천면 운봉리엔 운봉교회가 있다. 멀리 마이산과 구봉산을 바라보며,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운일암, 반일암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운봉교회는 아담하다.
1954년 성한종 전도사와 여섯 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설립했다. 그 이후, 주천면 깊은 산골에서 복음의 요람 역할을 했다.
1954년도 6월 17일 운봉교회가 문을 열 때, 고방원 회장은 주천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고 회장은 주일학교에 나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 회장의 신앙생활은 이어지고 있다.
◆ 37세에 경찰공무원 시작
6·25한국전쟁 때 구봉산에서 전사한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고방원 회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 공무원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나이는 37세였다. 경찰 공무원을 그만 둘 때 계급은 경위였다.
고 회장의 경찰공무원 생활은 거의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청량리와 송파지역이다.
송파경찰서 창설 멤버였다. 송파경찰서 기독교 모임의 초대 회장도 맡았다. 고 회장의 업무는 조사계였다. 적성에 맞아 행복하게 근무했다고 말한다. 검사들처럼 거의 수사만 하던 고 회장은 김대중 정권의 구조 조정 때 퇴직했다. 1999년의 일이다.
◆ 재경주천면민회 12대 회장 역임
고방원 회장은 50년 동안 향우회 활동을 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오랜 향우회 활동을 함께 했다.
재경주천면민회의 역사는 반세기가 넘는 55년이다. 창립 당시, 서울엔 재경진안군민회는 물론 진안군 다른 면의 향우회가 없었다. 재경주천면민회가 진안군 최초의 재경향우회인 셈이다.
고 회장은 재경주천면민회 12대 회장이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지금도 면민회 회장의 임기는 2년이고, 연임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 회장은 단임으로 회장직을 마쳤다. 젊은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고 회장의 뒤를 이은 재경주천면민회 13대는 허경석 회장이었다.
◆ 재경주천면민회 산하 ‘주경장학회’ 설립에 기여
재경주천면민회 산하엔 ‘주경장학회’가 있다. 지금도 1년에 500만 원씩 주천중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한다.
고방원 회장은 주경장학회 창설 제안자다. 뒤를 이어 재경주천면민회를 이끈 허경석 회장 등과 함께 주경장학회 건립 공동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주경장학회는 1억 원의 장학금을 모았다.
주경장학회 첫 번째 장학금 지급 행사를 학부모들과 함께 치렀다. 주천면의 노인회장들도 초청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장에 참석하려고 주천면에서 두 대의 관광버스가 올라왔다. 성대하게 행사를 치르고 서울 관광까지 시켰다.
그 이듬해엔 주천면 이장들도 초청했다. 그때 경비는 고 회장이 사비를 털어 충당했다.
◆ 재경진안군민회 부회장, 고문 등 역임
재경주천면민회 제12대 회장단을 이끈 고방원 회장은 재경진안군민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부회장도 역임했다. 지난 2014년, 진안군의 ‘진안군민의 장’ 시상식에서 고 회장은 애향장을 수상했다.
당시 고 회장의 직책은 재경진안군민회 고문이었다.
진안군은 고 회장에게 애향장을 시상하며 공적을 이렇게 밝혔다.
‘고방원 재경진안군향우회 고문은 재외군민들의 단합과 화합을 위해 봉사한 점과 주경장학회 설립 등 남다른 고향사랑 실천이 높이 평가됐다’고.
◆ 1993년 주천면 운봉리 모정 건립에 기여
주천면 운봉리엔 구봉정이라는 모정이 있다. 1993년에 건립됐다. 이 모정을 건립하는 일에 고방원 회장이 앞장섰다.
건립 비용은 4천만 원. 1993년의 일이니 작은 돈이 아니다. 지금의 돈 가치로 따지자면 몇억 원이 되는 거액이다.
요즘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모정을 지어준다. 하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고 회장이 앞장을 서서 건립 비용 모금에 나서자 많은 출향 향우들이 거들었다. 주천면민들도 거들었다. 그렇게 해서 건립한 모정이 구봉정이다.
지금도 구봉정은 마을에 서 있다. 구봉정 일대엔 비석이 서있다. 모정 건립 비용을 모을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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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시작한 신앙, 자식들이 이어
고방원 회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따님 한 명을 제외하고 세 명의 자제가 목회자다. 사위도 그렇다.
큰아드님과 작은 아드님은 서울 강남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하고 있다. 사위는 광진구의 교회에서 담임 목사를 맡고 있다.
자식들까지 신앙인의 길을 걷는 걸 하늘의 영광으로 돌리는 고 회장은 고향인 진안군 주천면의 미래를 이렇게 기원한다.
“우리 주천면은 진안군에서도 외따로 뚝 떨어져 있는 궁벽한 땅이다.
그 옛날, 충남 금산군이 전북일 때, 우리 주천면도 풍성했다. 사람도 많고, 돈도 잘 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도 많이 줄었다. 안타깝다. 그렇지만 주천면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고향과 객지에 있는 여러분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나도 고향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