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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공자의 후회, 知人不易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2.06.06 16:07 수정 0000.00.00 00:00

너희들은
알아두거라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 e-전라매일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두거라.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러준 가르침이다. 천하를 주유할 때 진나라에서 채나라를 거쳐 초나라로 가던 중 양식이 떨어져 1주일간이나 굶으며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다. 너무 지쳐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자공이 어렵게 포위망을 뚫고 인근 마을로 가서 양식을 구해왔다. 밥이 다 되었을 무렵 안회가 솥뚜껑을 열고 한웅큼을 집어먹고 있었다. 물을 길어오던 자공이 이를 보고 스승에게 묻는다. “어진 사람과 청렴함 선비도 곤궁에 처하면 절개를 바꿉니까?” 이에 공자는 안회에게 말한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다 되거든 먼저 제사부터 지내야겠구나!” 제사 음식은 그 누구도 먼저 손을 대서는 안 됨을 안회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뉘우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었습니다.” 공자는 잠시 안회를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위와 같이 말했다. 그렇다.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자기의 입장에서 판단하면 상대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 자기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마치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어느 날 늦게 출근한 하인을 나무란 적이 있었다. 실은 간밤에 갑자기 자기 딸이 죽어서 급히 묻고 오다가 보니 늦었다는 답변이었다. 자기 틀에서만 생각하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일화다. 우리는 이를 ‘프레임의 법칙(Frame law)’이라고 부르며, 입장 바꿔 생각할 것을 권한다(易地思之). 이런 경우는 제나라 선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2년 전에 평정했던 이웃 연나라에 그곳 백성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왕으로 세워라고 맹자가 일렀음에도, 결국 자기 아들(平)을 옹립했다가 이에 반발하여 난이 일어나고 말았다. 맹자 보기가 부끄럽다는 선왕에게 대부 진가는 주공의 예를 빗대어 말하면서 맹자를 설득하겠다고 자청한다. 은나라를 감시해야 할 형제들이 오히려 그와 합세하여 주공에 대항했으니 성인 주공도 그런 과오가 있을 진데, 하물며 왕께서는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요지였다. 과연 진가의 전략이 맹자에게 통할 수가 있었을까? “주공은 동생이었고 관숙은 형이었으니, 주공의 잘못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관숙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지 못하고 은의 유민을 감독하는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주공의 잘못이지만, 아우의 입장에서 형이 차마 반란을 일으키리라고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여기에 맹자는 한술 더 뜬다. “또한 옛날에 군자는 잘못이 있으면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는 잘못이 있어도 제멋대로 합니다. 옛날의 군자는 그의 잘못이 일월식과 같아서 백성들이 모두 알았는데, 그것을 고치게 되면 백성들이 모두 우러러보았습니다. 오늘날의 군자는 어찌 제멋대로 하면서도 따르는 사람들이 변명만 합니다. 그려!” 구차한 변명으로 군주의 개과천선하려는 마음을 저지하며 비행을 문식하고 간언을 막는 악행을 조장한 진가를 꾸짖은 것이다. 진가가 그를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주의 허물을 감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준엄하게 간언하며 비판해야 함을 가르치는 경구가 된다. 그것이 후회하여 내적인 허물을 고쳐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놓치면 결국 파멸할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잘 보여준다. 산을 뽑을 기세였지만 늘 하늘을 탓했던 항우, 가혹한 폭정으로 제후들의 반란을 촉발했던 진시황, 음주 가무로 백성을 수탈했던 걸주는 모두 나라를 멸망하게 했던 예가 된다. 비록 후회로 오늘 당장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내일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어제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하여 내일엔 반듯한 은총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에 충실하라는 까르페 디엠(Carpe Diem), 충실한 어제를 만들고 알찬 내일도 기약할 수 있음이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지금의 인생과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한 처칠의 답변이다. 2차 대전 중 장관 총리 등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만년엔 저술가로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최고의 삶을 살았음엔 분명하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뉴턴이나 셰익스피어보다도 처칠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눈도 마음도 믿을 것이 못 되어 늘 변명만 하며 살지만, 현실에 충실하면 후회를 줄일 수고, 누구나 처칠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게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것인가?(知人不易) 끝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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