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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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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현대인은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고 있다. 마당이 없는 집에는 두레박 우물도 보이지 않고, 꽃밭 한 평이 없다. 새끼줄을 두른 옹기 항아리가 있는 장독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마당이 있는 집에 들어서면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삽살개다. 마당 구석에 서 있는 감나무의 감들이 익어가는 마당은 정겹다. 해거름 저녁은 쓰러지는 저녁이 아니라 석양에 물든 저녁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대문 밖은 곧장 길이다. 삶의 낭떠러지다. 수많은 타인이 낯설게 기다리는 타향이다.
아파트에는 마당이 없다. 거실이 가족 간의 대화 장소나 휴식 공간 등 마당 역할을 대행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아파트 거실에는 바람도 구름도 없다. 손바닥만 한 인공 조경이 존재함에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또한 아파트에 살면서부터 자연을 향한 오감이 막힌 것도 모르고 지낸다. 나뭇가지를 붙들고 노래하는 새들, 귓불을 스치는 바람,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잊어 버렸다. 꽃향기도 나무 향이기도 거실에 갇혀 꼼짝달싹을 못 한다. 해도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가 한순간에 가버리고 달빛은 들어오고 싶어도 커튼이 가로막고 있어 엄두도 못 낸다. 거실은 낮이면 따스한 햇볕을 온몸 혈관 속으로 받아들이며 행복감에 잠기던 일을 놓친 지 오래다. 밤이면 별들이 와 놀다가는 은빛 마당도 잃어버렸다.
마당은 고추나 나락 같은 농산물을 말리고, 아이들은 오징어살이, 제기차기, 고무줄놀이로 해지는 줄 모르고, 명절이면 어른들은 멍석을 깔아 윷놀이를 즐기고, 결혼식도 했다. 또한 상을 당하면 상여가 슬픈 곡소리를 내기도 하고, 이웃을 맞이하고 손님을 보내는 소통의 공간이다. 마당은 사람으로 치면 허파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곳이다. 마당에 내리는 봄 햇살은 투명한 희망이고 가을 햇살은 잘 익은 기도다. 봄 햇살을 받은 꽃들은 마당을 가득 메우고 사람의 가슴에 꽃물을 들인다. 가을 햇살은 은총으로 오곡백과를 무르익게 하여 포만의 기쁨을 준다. 놀이공간이자 화합의 장이다.
마당을 쓸며 누군가를 미워했던 마음은 물론 서운한 감정과 원망을 함께 쓸어내야 한다.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를 생각하면 기쁨은 충만하고 행복해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삶일지라도 한 평의 마당조차 없이 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삶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마당에서 자라는 꽃들과 마당에 찾아오는 참새들과 교분하고 대화를 나누는 삶이야말로 여유이자 감동이다. 마당은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소통 공간일 뿐만 아니라 하늘을 향한 열린 공간이다. 또한 비어 있으므로 충만을 알게 하는 마음의 공간이다. 마당이 없다는 것은 꿈이 없다는 것이다. 정서적 여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텃밭에서는 가지가지 채소들이 자라고 여름에는 마당 가에 있는 우물물을 퍼 등목을 했다. 어느 순간 도시화되면서 마당도 텃밭도 화단도 모두 사라졌다. 덩달아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면 방안이나 거실에라도 꽃나무 몇 그루와 채소 몇 포기라는 가꾸며 잃어버린 여유와 정서를 찾아야 한다. 그것도 어려우면 마음속에 몇 평의 마당을 만들어 최소한의 여유와 사색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마당이 있어야 해와 바람과 구름을 만나고 달과 별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땅을 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정성수
전주비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