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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
전북 부안군엔 백산면이 있다. 백산면의 백산은 높이가 47m다. 다른 지방에서는 산이라고 칭할 수 없는 낮은 야산이다.
하지만 평야지대인 부안군 백산면에서는 결코 낮은 산이 아니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의 위상엔 견줄 수 없겠지만 전북인들이 모악산을, 광주·전남인들이 무등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듯 특히 부안고을 사람들은 백산을 위대한 산으로 여긴다.
왜들 그러는 건지 짐작들 하겠지만 백산은 동학농민혁명 때 ‘호남창의소’가 설치됐던 산이다. 사방이 들판으로 둘러싸인 백산에 오르면 주변에 펼쳐진 수십 리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학농민혁명 시절로 시곗바늘을 돌려 본다면, 왜 동학 농민군들이 이 백산에 올라 봉기를 시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백산은 관군이 어느 쪽에서 접근해오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산이다. 사방에 들판이 펼쳐진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수십 리 밖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움직임을 분간할 수 있으니 동학농민혁명 때, 부안고을에서 이 백산만큼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가 또 어디 있으랴.
1894년 3월 20일, 고창고을 무장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고부고을을 점령한 뒤, 백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그러기까지 꼬박 엿새가 걸렸다.
농민군이 백산에 진을 치자 이 고을 저 고을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흰 산 ‘백산(白山)’은 사람의 산인 ‘인산(人山)’이 됐다.
흰옷을 입고 죽창을 든 농민군이 일어서면 백산은 ‘백산’이 됐고, 반대로 농민군이 앉으면 ‘죽산(竹山)’이 됐다. 얼마나 많은 농민군이 모였고, 얼마나 많은 죽창이 농민군의 손에 들려 있었기에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까지 생겨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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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김제시 죽산면 출신
재경김제시향우회 이병준 사무총장은 1958년 김제시 죽산면에서 태어났다. 농가의 6남 3녀 중 6남이다.
이 총장의 정확한 고향은 죽산면 서포리. 서포리엔 동진강이 흐른다. 동진강을 건너면 부안군 동진면에 이른다.
전북의 남부를 흐르는 동진강. 정읍시 산외면의 풍방산에서 시작된 51km 물줄기는 호남평야를 적신 뒤 황해로 흘러든다.
이 총장은 동진강이 흐르는 고향마을 서포리 사람들을 이렇게 기억한다.
“평야갸 넓은 덕분인지 사람들의 마음이 포근하다. 정이 넘친다. 서로 협동하는 상부상조 정신이 강하다.”
오늘도 동진강엔 이 총장의 유년의 추억이 넘쳐 흐른다.
“어렸을 때, 죽산초등학교 다녔다. 그때 서포리를 흐르는 동진강엔 다리가 없었다. 형수님이 동진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동진초등학교를 찾아가면서 버스를 타고 멀리 돌아갔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동진강엔 갯벌이 많아서 다리를 놓기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동진강에서 수영도 했고, 갯벌에 대나무를 꽂아 골대를 세우고 축구 시합도 했다.
동진강엔 망둥어가 흔했다. 망둥어를 많이 잡았다. 그 시절, 숭어는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뱀장어가 많았다. 동진강엔 실뱀장어를 잡는 배들이 여러 척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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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대 졸업 후 서울의 초등학교로 발령 받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병준 사무총장은 전주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해성고등학교 졸업 뒤, 전주교대에 진학한 이 총장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누원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끝으로 교직을 마쳤다.
“초등학교 교사를 서울에서 시작할 때,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다. 그렇지만 내가 택한 교사라는 천직은 내 인생길을 보람 있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키우는 창조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육성한다는 것, 정말 보람 있는 일 아니겠는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성공하면 정말 기분이 좋다. 교사는 이렇게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주는 직업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35년 간 제자들을 가르쳤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겠지만 내가 가르친 제자도 수천 명에 이른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내 마음을 아낌없지 주려고 늘 노력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늘 기쁨으로 충만했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구김살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이 총장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보이스카웃 활동도 열심히 했다. 1991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 때는 외국의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전통놀이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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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골퍼 이지연 선수의 아빠
이병준 사무총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장녀이자 맏이인 딸이 프로골퍼 이지연 선수다. 1987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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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죽산면향우회 활동엔 19년 헌신
이병준 사무총장은 재경죽산면향우회의 사무국장을 19년 동안 맡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재경죽산면향우회가 행사를 개최하면 1,500여 명이 모이기도 했다. 특히 체육대회엔 참가 인원이 많았다.
이렇게 재경죽산면향우회가 규모 있는 행사를 치를 수 있었던 건 향우회 임원들의 노고도 컸겠지만 이 총장의 숨은 노력이 매우 컸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재경죽산면향우회 체육대회는 보통 가을에 열렸다. 고향인 죽산면에서도 열렸고, 서울에서도 열렸다. 체육대회가 열리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출향 향우들이 대거 참가했다.
“재경죽산면향우회 조직을 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고향을 지키고 사시는 분들에겐 계몽도 해야 되고, 홍보도 해야 되고, 고향 선후배들과 출향 향우들의 네트워크도 형성해야 되고. 사실 시골에 사시는 분들과 외지에서 사시는 분들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한다는 점도 싶지 않았다.
고향에 계시는 분들이 향우회의 중심이라는 생각한다. 그 생각엔 여전히 변함없다. 그러니 나와 생각이 좀 다르더라도 고향분들의 뜻을 맞춰 주는 것이 출향인들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19년 동안 맡았던 재경죽산면향우회 사무국장 자리를 후배들에게 넘겨 준 이 총장은 재경죽산면향우회를 이렇게 자랑한다.
“재경죽산면향우회는 기수별로 향우회가 튼튼하게 조직돼 있다. 집행부에서 뭔가 하달되면 기수별로 알아서 야무지게 추진한다. 그렇게 기수별로 움직이다 보니 재경죽산면향우회는 기동성도 뛰어나다.
그런가하면 재경죽산면향우회는 젊음이 있다. 김제의 다른 지역 향우회와 달리 젊은 층이 많이 참여한다.
향우회는 본질적으로 참여해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부담이 없어야 된다. 내 소신은 그렇다. 그래서 재경죽산면향우회의 여건을 그렇게 조성해 놓았다. 그랬더니 젊은 사람들도 향우회에 부담 없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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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 재경김제향우회 사무총장
재경김제시향우회 현 사무총장은 이병준 총장이다. 사무총장을 맡은 것은 4년째다.
이 총장은 사무총장을 맡기 전 12년 동안 사무국장을 맡은 바 있다. 그러니 자그마치 16년 동안 재경김제향우회의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는 셈이다.
재경김제향우회는 현재 강완구 회장이 이끌고 있다. 4년 전에 취임했다. 강 회장의 고향은 김제시 백산면이다.
전라도 다른 지역 재경향우회도 마찬가지일텐데, 재경김제향우회도 코로나19로 활동이 미미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재경김제향우회 체육대회가 열리면 2,500여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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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 서울 노원구검도회 부회장
이병준 사무총장은 현재 서울시 노원구검도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학생과 일반인 등에게 검도를 지도한다.
이 총장의 모교인 전주 해성고는 검도의 학교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검도를 배운 이 총장은 전주교대 졸업 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고 나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검도를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