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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동제사에 가입,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갑·한흥교·민제호 선생을 2022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동제사는 1912년 신규식 선생이 중심이 되어 상하이에서 조직된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로, 상하이 한인들의 단결과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김갑 선생은 1909년 영남지역 첫 비밀 결사조직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했으며, 1917년 상하이로 건너가 동제사에 가입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에서는 교통부 위원, 군무위원회 이사로서 초기 임시정부 안정화를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1924년 4월부터 임시정부 법무총장대리차장, 노동총판, 재무장으로 활동하며 살림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1933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 있는 광제의원에서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흥교 선생은 1911년 신해혁명 참여를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신해혁명 참여를 계기로 동제사가 결성될 때부터 가입·활동했고, 항저우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제사 동지들의 의료지원을 전담했다.
이후 만주, 몽골지역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지원업무에 이어 중국 육군 군의정 등을 거쳐 1914년 상하이로 돌아온 선생은 1916년까지 상하이, 절강성 지역에서 의원을 개업, 동제사를 재정적으로 후원했습니다. 1927년 국내 귀국 후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만주지역 의료 활동과 함께 북경, 태원 등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했고, 해방 후 귀국, 1967년 82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민제호 선생은 한성영어학교 재학 중 국권을 빼앗기자 항일운동 참여를 결심, 1913년 상하이로 망명해 동제사에 가입했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열린 임시의정원에서 69명의 의원에 선출된 후 대한적십자회와 대한인거류민단 등 대중단체에 참여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32년 한인애국단 단원인 윤봉길 의거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자 상하이 임시정부와 함께 항저우로 피신했지만, 곧 병을 얻어 1932년 4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갑 선생에게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한흥교 선생과 민제호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제공= 서부보훈 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