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칼럼 칼럼

결정적인 한 마디, 言必有中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7.17 17:50 수정 0000.00.00 00:00

화와 복은 문이
따로 없으며
오직 입으로
자초할’ 뿐임을
명심하여
말해야 할 때
(時然後言)
필요한 말로써
(言必有中)
상대를 감동시키면서(言忠信)
꽉 찬 인격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e-전라매일
“저(臣)는 함곡관 안에 들어온 뒤에 가을 터럭 만한 작은 것도 범하지 않고(秋毫勿犯) 하찮은 물건 하나까지도 관리에 만전을 기하면서 장군께서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다른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유방이 항우에게 홍문연에서 간한 말이다.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에게 왕으로 봉하겠다는 초나라 회왕의 약속에 따라 각기 다른 길로 함양을 향해 진격했다.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나 책략이 뛰어난 장량의 도움으로 먼저 함양에 입성한다. 그리고 진의 3세 황제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유방에게 선수를 빼앗긴 데다 그의 군사들이 함곡관을 가로막아 자기 부대의 진입을 저지한 것에 크게 분노했던 항우, 마침 책사 범증은 전승 축하연을 핑계로 유방을 초대하여 기회를 봐 제거하기로 했다. 무릎 꿇은 채 자신을 신(臣)으로까지 낮추는 공손하고 유약한 모습을 본 항우는 금세 마음이 풀어져 그를 죽이려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어지는 칼춤의 위협 속에서 유방은 화장실을 핑계로 그곳 사지를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이 연회에서 항우에게 했던 유방의 가을에 가늘어진 짐승의 터럭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는 ‘추호물범(秋毫勿犯 또는 秋毫無犯)’이 불같은 항우의 마음을 녹여버린 것이다. 급한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순진한 항우를 읽을 수 있다. 범굴에 들어온 유방을 놓쳐버린 항우(27세)를 향해 범증(73세)은 독설을 쏟는다. “아! 어린아이와는 대사를 도모할 수 없구나! 항장군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바로 패공이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포로로 잡히게 될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추호물범’ 한 마디로 목숨을 건진 유방, 범증의 말대로 역사는 유방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꼭 필요할 때 그에 합당한 한 마디는 자신을 보존하고 천하도 건질 수 있게 된다. 이는 포숙이 제나라 환공에게 관중의 등용을 건의한 것 역시 이의 다름 아니다. 원래 관중은 환공을 죽이려고 화살을 쏘았던 전력이 있었지만, 자신의 친구이자 환공의 심복인 포숙아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나라만을 통치하고자 한다면 관중을 죽여도 좋으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관중을 등용해야 합니다. 관중을 등용하시면 그는 공을 위해 활로 천하를 쏠 것입니다. 어찌 그까짓 혁대 고리를 쏜 것만 말씀하려 하십니까?” 그 결과 관중은 재상이 되어 제나라를 춘추 5패 중 최고의 패자로 만든다. 이와 같이 말은 원자폭탄보다도 더 무서운 위력을 갖는다.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면서 천하를 구하기도 한다.
재상의 옥을 훔친 도둑의 누명으로 심한 고초를 겪자 이를 몹시 걱정하는 아내에게 “내 혀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봐주시오?(吾舌尙在)”라고 말했던 장의였다. 그는 후에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벽옥 대신 산동 6국의 도성을 훔쳐 진나라로 하여금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게 한다. 멀리 있는 나라는 설복시켜 동맹을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원교근공인 소위 ‘연횡책(連橫策)’을 구사한 덕분이다. 공자 역시 상대를 설복시키는 설득의 달인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제자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엄살을 부린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법인데(力不足者 中道而廢). 너는 지금 처음부터 아예 못하겠다고 선을 그어 한계 짓고 있구나!(今女畫)”라고 나무란다. 중도에 그만둔다는 ‘중도이폐(中道而廢)’와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못 하겠다고 자빠지는 ‘금녀획(今女劃:)’의 고사다.
이외에도 계강자에게 정치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는 ‘정자정야(政者 正也)’, 무도한 자를 죽여서라도 기강을 세우면 어떻겠느냐고 할 때 윗사람의 덕은 바람이고 백성의 그것은 풀인데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 방향으로 숙인다면서 ‘초상지풍 필언(草上之風 必偃)’을 유세한다. 이외에도 솔선수범 등을 주문한 가르침들이 논어에 가득하다. 맹자 역시 언어의 마술사였다. 신하가 천자를 죽인 것이 옳은지를 묻는 제선왕에게 “일개 필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자기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더이상 질문할 수 없게 만든 그의 설득력이 놀랍도록 뛰어나다. 존경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그의 책 ‘맹자’도 여러 제후나 그의 제자들과 나눈 문답과 정치 얘기들로 빼곡하다. 모두가 사리에 딱 맞는 그러면서도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명구들이다. 이처럼 상대를 설복시키는 말재주는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값진 보배지만 특히 땅을 놓고 다투는 패도의 시대는 인의라는 도덕률보다 부국강병이 더 우선시 되었다.
때문에 공맹은 덕치를 펴고자 천하를 주유하고도 별 성과 없이 빈손 귀국해야만 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평소 초나라의 패옥을 무척이나 탐낸 진(晉)나라의 실력자인 조간자에게 백형은 선왕의 노리개일 뿐 진짜로 아끼는 보배는 훌륭한 신하 관야보입니다라고 직언하여 그를 무릎 꿇린 초나라의 사신 왕손어, 빈약한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합세하여 왜적을 막아라는 선조에게 아직도 12척이나 되는 전함이 있고 미천한 제가 살아있습니다 라고 장계를 올린 이순신의 ‘상유십이 미신불사(尙有十二 微臣不死)’는 내면의 깊은 신념이었다. 세계 석학들도 불가능하다던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 공사에 폐선박을 이용하여 성공시킨 고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 철학과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물건을 팔았던 롯데 고 신격호 회장의 ‘이봐, 가봤어?’ 정신은 갈고닦은 실천력이 뭍어 나는 울림의 말들임을 알 수 있다. 무릇 말이란 뜻만 통하면 될 뿐이라고 하지만 사리에 꼭 맞는 적확성과 신중함이 중요하다. ‘화와 복은 문이 따로 없으며 오직 입으로 자초할’ 뿐임을 명심하여, 말해야 할 때(時然後言) 필요한 말로써(言必有中) 상대를 감동시키면서(言忠信) 꽉 찬 인격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방의 ‘추호물범’처럼!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저작권자 주)전라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