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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눈]허튼소리 몇 마디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7.18 16:35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속에 불이 들어서 그러는 거야. 할 수 없어.’ 거의 종일 돌아가는 에어컨 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는 전기세 걱정일랑 잠시 눌러 둔다.
봄을 수놓던 꽃들이 초록에 밀려나고 지금은 원추리, 백합, 수국, 꽃댕강나무,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개망초꽃이 초록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앞 방죽엔 연꽃이 한가득이다. 사방이 푸르게 둘러친 앞마당 끝 방죽에 가득 핀 연꽃을 바라보며, 나는 날마다 누군가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 깃을 여민다. 지은 복 없이 과분한 복락을 누리는 건 아닐까 미안하기도 하다.
애써 자리를 잡아주고 북돋아 주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가지를 뻗고 키를 키우고 몸피를 늘리며, 꽃과 열매와 칠월이 중순으로 꺾어지면서 불볕과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가 사위를 장악한다. 집 주변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있고 앞마당 끝에는 농업용 저수지인 조그만 방죽이 있어서 시내권보다는 덜 덥고, 겨울엔 훨씬 추웠던 옥정리도 이 여름은 습하고 더워서 견디기가 힘들다. 노모님과 어린 손녀를 핑계로 진즉부터 에어컨을 켜놓고 지낸다. 에어컨을 점심 무렵부터 잠들기 전까지 켜놓고 지내니 전기세 폭탄이 무섭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 추위나 더위를 참지 못하는 건 남편이나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산다고 너무 아끼지 말고 편리하고 편하게 살지! 하는 심리적 요인도 없지 않을 것이다.
향기와 그늘로 맡은 소임을 다하는 초목을 보면서, 가뭄 속에서도 한가득 환하게 핀 연꽃을 보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어떻게든 핑계를 끌어다 붙이며 게으름을 피우고, 아프다고 엄살 부리고, 힘들다고 불평하는 내가 참 못났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어차피 내가 견뎌야 할 몫인데 왜 나무처럼 풀처럼 의연하지 못할까?
얼마 전에 축하받을 일이 있어서 꽃다발을 몇 개 받았다. 꽃다발을 받아 안고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와 그곳에 담긴 따뜻한 마음에 너무 행복했다. 나도 누군가 기쁜 일이 있으면 손쉽게 꽃다발이나 화분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 꽃다발은 몇 시간의 찬란한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고는 이내 쓸모없이 뒤로 밀쳐지고 만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모를 꽃에게는 너무 잔인하고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으로 가져와서 길어야 사나흘쯤 꽃으로서의 품위를 이어가다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꽃다발~ 그냥 자연 속에서 피어있었더라면 좀 더 긴 생명을 이어가고, 하다못해 벌 나비를 만나 씨앗이라도 남겼을 텐데, 하필 내 손에 와서 너무 쉽게 시들어 버림을 받은 너, 다발에 묶인 꽃이여! 너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너는 누구의 분질러진 순수였더냐!

/전재복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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