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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요일별 특집

[온고을 문학산책] 장독대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2.07.19 17:07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밤새 하얀 이불을 덮고 누웠나
추운 줄 모르고 창문 없는 방에는
밤의 눈썹 고요의
눈썹 아래 고인 그 발효의 두께만큼
뒤돌아보니 신발자국의 현기증이다
눈발이 쓸고 간 머리 흰 여자가
검은 불덩이를 띄워 놓은 것이다
덕지덕지 손맛이 둥둥 떠돈다
때 묻은 새끼줄
만주벌판, 과부댁, 얼음 박힌 고단한 맛
탯자리 내장을 이어
할머니를 업고 보릿고개를 넘었을 어머니
모녀의 주름이 출렁인다
소금기 뼈들이 진하다
장독대 위에 놓인 어둠을 쓸어
비로소 환해지는 아침
시간의 덩어리가 메주에 들러붙어 지금,
어머니 잔등을 넘어오고 있다

<시작노트>
어둡던 시절. 고국을 떠나 만주벌판을 헤메다가, 청상과부 어린 새끼들과 봉천역 해방 열차를 탄다. 몸에 지닌 건 달랑, 옥수수 엿판과 씨간장단지 하나.
발이 부르트도록 삼팔선 넘어 긴 시간 돌아온 탯자리. 보릿고개를 넘어 온 어머니, 할머니가 남겨 준 장독대, 밤새 소복이 흰 눈이 쌓인 아침. 발효의 두께만큼 고단한 모녀의 시간이 어둠의 고요만큼 깊은 맛으로 익어간다.

/유 인 봉
전북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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