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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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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의 표상이며 빛이었던 아버지께서 여든 무렵 치매로 무너져 빛바랜 낙엽으로 변해갔다. 처음엔 엉뚱한 행동과 말씀이 낯설어 생각 없이 웃었다. 죽음보다 더 큰 형벌인 줄도 모르고.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을 한 사람씩 종내에는 자신마저도 잃었다.
나는 고모도 되고 동네 아줌마도 되었다. 그리고 집을 잃고 헤매는 날들이 많아졌다. 주무실 때를 제외하곤 길 잃은 사슴이 되어 하루면 모양성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셨다. 방랑자가 되어 집안에서 궤도를 운행하는 별처럼 쉬지 않고 걸었다. 지구도 돌고 세상도 돌고 무엇엔가 끌리듯 아빠도 돌고 자전과 공전을 하며 행성처럼 돌았다.
민들레 꽃씨가 뿌리를 내리려 공중을 떠도는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웬 늙은이냐고 호통치는 그분이 문득 보고 싶어 백 리 길을 달려갔다. 당신이 잘못 떨군 삶들을 주워 담기라도 하시는 듯 마당을 거닐며 열심히 검불을 줍고 계셨다. 오랜만에 아빠 옆에 누운 나는 한밤중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다. 어둠을 이고 망부석이 되어 꼼짝없이 앉아있는 영혼의 그림자, 아버지라고 부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인간의 처절한 고독을 연출하는 가슴, 미어지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느껴 감히 어쩌지 못하고 누워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진 나무처럼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모처럼 빙긋이 웃고 계셨다. 새들이 나무를 오가며 아침을 흔들자 훨훨 날아 자유로운 영혼을 만나고 싶으신지 계속 웃으셨다.
왜 웃으시는지 묻고 싶었지만 모처럼 느낀 행복을 깨트리는 것 같아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어쩌면 새들과 진정한 교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슴처럼 별처럼 망부석처럼 나무처럼 보이며 소실점을 향해가던 백발의 나그네는 시간 밖에서 더 머무르지 못하고 생의 마침표를 찍으셨다. 흰 눈이 낙화처럼 휘날리는 겨울밤이었다.
꽃비 내리는 어느 봄날 서재에 앉아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나를 인식하지 못한 아버지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듯이 새와 나무가 나를 알지 못한다고 전혀 무관한 대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몇십 억 년 전 어떤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사슴과 별과 망부석도 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의 성분과 저 별의 성분이 같다지 않던가.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듯 아버지를 통해 난 우주를 알았다.
지금 세상이 바이러스 공격으로 곤혹을 치루고 있다. 자기 관조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우주 질서를 성찰해 보고 진정한 교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소우주로서의 인간은 우주의 최초 생성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생성계의 전 진화 과정을 무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다 한다. 우리는 하나다. 우주도 하나다.
/김진숙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