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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최고로 아름다운, 연비어약(鳶飛魚躍)

admin 기자 입력 2022.10.18 12:20 수정 2024.11.18 12:20

ⓒ e-전라매일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논다(鳶飛魚躍).” 시경에 나오는 명구다. 원래는 ‘연비려천(鳶飛戾天) 어약우연(魚躍于淵)’이었으나 약하여 ‘연비어약’으로 널리 불린다. 솔개 연鳶 날 비飛 이를 려戾 하늘 천天 고기 어魚 뛸 약躍 어조사 어于 연못 연淵으로,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는 풀이다. 주체의 놀이 공간이 첨가된 것으로 솔개와 물고기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표현이다. 그러나 좀 더 의미를 부여하면 새가 날고 물고기가 노니는 것은 천지자연의 질서에 따라 각자의 공간에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태평성대를 느낄 수 있다. 천지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각자의 삶을 누리는 평온하면서도 오묘한 우주 법칙을 보게 된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하게 한다. 멈춘 구름 사이에 솔개가 원을 그리며 유유히 날 듯이 흐르다가 멈춘 맑은 물속 고기 한가로이 뛰노는 것처럼 태연자약한 가운데 힘찬 활동력은 늘 지녀야 할 군자의 행동거지, 정중동(靜中動)이다. 이러한 함축된 의미를 따라 배우려는 생각에서 관공서 등지의 액자에 특히 많이 보게 되는 눈익은 서화 ‘연비어약’이다. 이는 조선의 관료들 사이에도 즐겨 회자 된 것으로 보인다. 율곡(1536~1589)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16세) 불가에 귀의하여(19) 금강산 마가연에 머물 때였다. 노승이 불가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같은 법어가 유가에도 있는지를 물을 때 연비어약을 예 들며 시까지 지어준다. 즉,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노는 것은 위아래의 이치가 같다는 것이니 이는 色도 아니요 또한 空도 아니라오 실없이 한 번 웃고 내 신세 살펴보니 석양에 깊은 산속 길 잃고 홀로 서 있네.” 이치는 가깝고 쉬운 데 있음에도 멀고 높은 곳만 바라보며 헤매고 있는 자신을 탓하는 듯한 노래다. 결국 1년 만에 환속하여 유가의 길을 걷는다. 불가에 잠시 머문 이것이 후에 시빗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 퇴계의 연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도 천지자연의 오묘함을 노래하면서 연비어약을 인용한다. 게다가 도산서원 입구의 절벽이 강을 향해 돌출해 있는 동쪽은 ‘天淵臺(천연대)’, 서쪽은 ‘雲影臺(운영대)’라고 칭하였는데 이 천연대 역시 ‘연비려천’의 ‘천’과 ‘어약우연’의 ‘연’이 결합하여 이뤄진 이름이다. 그리고 채근담에서도 도를 깨우친 사람의 경지를 표현한 의미로 쓰임을 볼 수 있다. 즉, “사람은 모름지기 멈춘 구름과 잔잔한 물 위에서 솔개 날고 물고기 뛰는 기상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도를 체득한 이의 마음인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정(靜)과 동(動)의 순환 속에 지칠 줄 모르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연비어약의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시경(대아 한록편)과 중용의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암시한다. 즉, ‘한록편’은 문왕의 훌륭한 덕성을 읊은 시로, 높은 은덕과 교화가 만백성은 물론 온갖 짐승에게까지 두루 미침을 칭송하는 노래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노닒은 그들이 각각 살 곳을 얻었다는 각득기소의 의미로, 천지자연의 법칙이 미치는 영역이나 범위를 문왕의 덕성에 빗댄 것이다. 그래서 중용(12장)에서도 연비어약의 덕성이 상하에 밝게 드러남을 뜻한다고 했다, 군왕의 성덕이 천지 만물에까지 널리 고르게 그리고 끝없이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때문에 솔개는 성인 문왕을, 물고기는 필부필부인 뭇 백성을 뜻하면서 성군의 덕치가 우주 전체에 고루 미친 평화로운 세상을 읊은 것이다. 물론 문왕은 주나라를 개창한 무왕의 부친으로 그의 훌륭한 덕성과 교화는 널리 소문난 성인이었다. 중국 서북부 황토 고원지대의 촌락에서 출발한 제후국 주나라는 천자국 상(商)나라에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친 작고 가난하면서도 오래된 속국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조상이 했던 대로 늘 백성을 두려워하며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다. 노인을 공경하고 약한 자를 감싸는 인덕(仁德)과 함께 예의와 겸손으로 인재를 소중히 여기자 천하의 많은 재사가 몰려든다. 백이와 숙제, 산의생과 굉요 그리고 태공망 등이 그를 따랐다. 그 결과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주나라 860여 년(BC1122~256)의 기틀이 바로 그에게서 연원했음을 보게 된다. 민심을 바탕으로 천하를 얻은 문왕, 많고도 많은 칭송들이 전해옴을 확인할 수 있다. 솔개가 여유롭게 높이 날고 물고기가 자유롭게 약동하며 각자의 생을 즐기는 평화로운 모습은 천지자연의 법칙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이지 않아도 태평성대를 바라는 필부의 소박한 희망임엔 틀림 없다.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온갖 질병과 스트레스가 우리를 옥죄고 있는 요즘, 어렵고 힘들수록 시화연풍(時和年豐)과 연비어약의 태평연월(太平烟月)이 더욱 그립고 절실하다.

/양태규
21옛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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