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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칼럼-개헌과 대통령 임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5.06.01 14:33 수정 2025.06.01 02:33



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지 38년이 된 ‘87체제’ 헌법은 생명의 끈질김이 길게 가기로 유명하다. 개헌 얘기가 나온 지 언제인데 아직도 첫걸음도 못 떼고 있다. 대통령마다 한 번씩은 통과의례처럼 개헌을 공언했다. 다른 정치인도 아니고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발언이니까 제법 권위가 붙은 만 한데 개헌에 대한 약속은 대통령부터 시들하다. 여기에 역대 국회의장도 한몫 했다.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처럼 일단 뱉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행태는 모두 똑같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후보와 국회의장은 또 한 번 개헌 무대를 장식하는 주연배우가 되었다.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후 대선에서 국민투표를 하자는 오래 묵은 제안이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은 사흘도 못되어 자기 의견을 철회하고 말았다. 아마 당의 압력이 셋으리라고 짐작은 가지만 해도 너무 했다. 대선 후보들은 모두 개헌에 대한 확고한 안을 가지고 선거운동에 임한다. 가장 관심을 집중시키는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과 국민의힘 김문수다. 이재명은 윤석열 탄핵 이후 누구에게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지칭된다. 김문수 역시 한덕수와의 단일화 문제로 옥신각신 했지만 당원들의 일치된 자유의사에 의해서 후보로 확정되어 맹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개헌안은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바로 미터가 될 것이기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개헌의 요체는 권력 분산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큰 대통령 권한 때문에 민주주의인 것처럼 꼴은 갖추었으면서도 사실상 제왕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권력의 힘이 막강했던 것이다. 두 후보의 개헌안은 비슷해 보여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확 갈렸다. 핵심은 대통령 임기 문제다. 이재명은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연임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개헌안을 내놨다. 김문수는 중임으로 못 박았다. 연임(連任)과 중임(重任)은 한자(漢字)로 표시되는 일종의 숫자다.
 
연임은 당선만 되면 횟수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중임은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두 번 한다는 뜻이다. 이 숫자풀이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질곡 속에서 헤매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중임으로 제한된 임기 조항을 불법적으로 뜯어고쳐 3선개헌을 단행하고 내친 김에 4선으로 내달려 부정 불법 선거를 자행했다가 4.19학생 혁명으로 쫓겨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처음에 중임제 헌법을 만들었다가 3선개헌으로 이를 파기하고 다음에는 유신헌법을 통하여 직선제를 없애고 영구집권의 길을 열었다가 10.26사태로 세상을 뜨는 비운으로 끝마쳤다. 권력을 잡으면 처음 약속은 팽개치고 달콤한 영구집권의 단꿈에 빠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이다.

러시아의 푸틴 역시 중임으로 시작한 후 임기가 끝나자 허수아비를 대통령으로 앉혀 놓고 자신은 총리가 되어 모든 권력을 주물렀다. 허수아비의 임기가 끝나자 개헌을 통하여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하고 이제는 대놓고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는 영구 대통령으로 행세하며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세계를 위협한다. 중국의 시진핑 역시 정해진 주석의 임기를 채우고 개헌으로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보인다. 독재자에게 헌법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재명은 연임안을 내놓으면서 현행 헌법에 이 조항의 개헌안을 통과시킬 때의 대통령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못박아 놓으면 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승만 박정희 푸틴 시진핑 모두 다수표를 앞세워 이를 무력화(無力化)시키고 자기 마음대로 바꿨다. 유죄판결을 때린 대법원장을 탄핵하겠다는 다수당의 횡포는 영구집권에도 그대로 통용되지 않겠는가. 미국의 워싱톤은 국민들의 열화같은 3선 주장을 뿌리치고 두 번으로 끝냈다. 헌법 규정에 없는데도 그랬다. 그 뒤 이를 어긴 대통령이 없었는데 루즈벨트가 3선 4선을 연임하다가 중병으로 죽은 후 헌법을 고쳐 중임으로 확정되었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지 않으면 또다시 독재정권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이번 대선이 국가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금석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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