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항일운동기념탑 · 박항식 시비
남원항일운동 기념탑 건립문
천년 고도 남원은 예로부터 많은 충의열사를 배출하여 왔다. 고려 말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려다 장렬하게 순국한 만여 명의 민관군, 그리고 한말(韓末) 국권이 기울자 영호남 의병의 선봉장이 된 양한규 등이 이 고장의 뜨거운 충절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조상들의 연면(連綿)한 애국혼이 1919년 4월 3일 이석기에 의해 덕과면과 사매면에서 독립만세의 첫 함성으로 울려 퍼졌다. 4월4일 남원 장날에는 북 시장터인 이곳에 수천 명이 운집하여 또다시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으니, 이는 실로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남원인들의 드높은 의기와 애국심의 발로라 하겠다.
이후 천도교 남원교구장 유태홍, 대한국민회를 설립한 박기영, 조선독립대동단 전라북도지단를 조직한 한태현, 이두용의 남원청년동맹과 형평사 및 신간회, 그리고 운봉에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소작료 불납운동과 강제 부역동원을 거부한 임철호 등, 이 지역 우국열사들은 국내 혹은 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가면서 암암리에 항일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그밖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는가 하면, 야학회를 열어 농민들과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참혹한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조국광복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의연(毅然)하게 적과 맞서 싸운 지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선열들의 숭고한 구국행적(救國行蹟)을 기리며 그 뜻을 이어 이 땅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고자 남원 4·4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이곳에 항일운동 기념탑을 세운다.
-2005년 10월 18일 글 : 시인·문학박사 김동수
호운 박항식 시비 비문
壺雲 朴沆植 시인은 1917년 남원 수지면 홈실(好谷)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 (‘50)하고 수지중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지낸 뒤 원광대 국문과 교수로 일생을 보냈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에 「눈」이 당선된 이래,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 시조 「노고단」과 「문장대」가 각각 당선되어 문학적 역량을 널리 떨쳤다.
호남문학회와 한국언어문학회장을 역임하고 『白沙場』, 『流域』, 『老姑壇』, 『方壺山 구룸』 등 주옥같은 시집과 논저 『修辭學』을 펴내는 등 올곧은 국문학자요, 세속을 벗어난 낭만적 선비 시인으로서 제자들과 더불어 시를 논하며 살다 1989년 1월 8일 익산시 남중동 자택에서 永眠하였다.
기라성 같은 원광문인들을 길러 한국문단에 새로운 사단을 형성한 선생은 정결한 언어와 심원한 동양적 사유가 정교하게 어우러진 서정미학으로 韓國詩史에 새로운 정신세계를 열어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글: 伊彦 金 東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