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성 - 김도정
너와 나 처음 마주한 순간 그 자리는
낯설고 조용한 땅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
말 없는 눈빛으로 경계하며 주시했다
무거운 침묵의 벽이
사이에 드리워지고
침묵 속에서 나는 너를 식히기도 하고
때로는
너를 타오르게도 했다
깊고 먼 우물 속 우정이라는 이름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침묵이
짙푸른 너의 눈동자에
조용히 스며들고
말 대신 정적이 서로를 감쌌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굳어졌고
또 정적에 익숙해졌다
별처럼 아득한 우리의 지난날이 문득
내 가슴속에 되살아나
묵묵히 우리의 자리를 세운다
우정은 그렇게 말없이 자라 성(城)이 되었다
□ 정성수의 詩 감상 □
시「우정의 성(城)」은 말보다 깊은 정서로 맺어진 관계, 즉 ‘우정’이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 단단한 신뢰로 쌓여가는지를 고요하고 묵직한 언어로 그려냈다. 시는 ‘너와 나 처음 마주한 순간’이라는 기억의 회귀로 시작하며, 그 출발점은 낯설고 경계심 어린 만남이다. ‘이방인’이라는 표현은 관계의 초기 단절과 거리감을 상징하며, ‘무거운 침묵의 벽’은 말 없는 서로의 감정을 함축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단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인은 침묵 속에서 ‘너를 식히기도 하고 / 때로는 / 타오르게도 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감정의 교류가 말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정적이지만, 내면은 감정의 온도 변화가 일어나는 살아 있는 관계임을 드러낸다. ‘우물 속 우정’이라는 은유는 깊이 잠재된 감정의 순수함과 지속성을 상징하며, 관계의 본질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깊이를 부정할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바위처럼 단단한 침묵’은 흔들림 없는 신뢰와 인내를 상징하고, 그것이 ‘짙푸른 눈동자에 조용히 스며들’며 관계의 내면으로 흘러 들어간다. 말 없는 정적이 오히려 두 사람을 더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로 작용하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를 통한 소통보다 ‘존재 자체로 느끼는 교감’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며, 그런 관계가 더욱 성숙하고 견고해진다고 말한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굳어졌고 / 정적에 익숙해졌다’는 구절은 우정이 단순한 감정의 교류가 아닌, 함께 견뎌낸 시간의 누적으로 형성된 삶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 마침내 ‘우정은 그렇게 말없이 자라 성(城)이 되었다’는 결론은 이 시의 핵심이자 정점이다. 말없이 쌓아 올린 신뢰와 시간, 이해가 곧 튼튼한 성벽처럼 두 사람을 지켜주는 우정의 요새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시「우정의 성(城)」은 수다스럽지 않고, 감정을 절제한 채 천천히 쌓아 올린 관계의 진정성을 담담히 노래한다. 말 없는 교감 속에서도 깊이 자라고 완성되어 가는 우정의 본질을 성찰하며, 인간관계에서 가장 순수하고 단단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서정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