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봉 시인 / 수필가
돈 많은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잘 나가는 학과에 들어가는 걸 욕심낸 적 있었다. 음치인 내가 싫어 노래 잘하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자녀들이 공부 잘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 가기를 욕심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비현실적인 바램이었고 이상적인 꿈에 불과했다. 결론은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 남들보다 더 좋은 위치에 더 높은 자리에 더많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 앞을 향해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정상의 신기루 같은 꿈과 목표를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반환점을 돌아 산 내려오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소중하고 남은 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헤아려 보고 멈추어 서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 서울 갔던 고향 친구 하나가 다시 귀향하여 마을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경할 때도 빈손이었지만, 귀향할 때도 역시 빈손이었다. 가지고 온 곳은 하얘진 머리칼과 눈에 띄게 많아진 얼굴과 손등의 주름이었다. 친구는 어린 시절 가난을 벗어나 보고 싶어 제대로 학업을 채워보지도 못하고 맨몸으로 상경을 결심 했다. 스무 살 갓 넘은 시절 서울에서 그 친구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잔 적이 있다. 이발소 머리 감아주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친구는 한 때는 방범초소에서 낮과 밤을 구분 없이 일하기도 했고, 달동네 문간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영업사원으로 골목을 누비며 꿈을 키우고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마흔 무렵에는 제법 규모 있는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사업가의 꿈을 키워나갔고, 중년을 넘어서는 서울역 뒤편에서 수제구두공장을 운영하며 기업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끝내 친구를 외면하고 말았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고, 결국 기업가로서의 꿈을 접고 낙향하고 말았다. 그 후 고향에 돌아온 친구는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조그만 양봉 농사를 하며 일상의 여유와 소소함을 즐기고 있다.
한번은 기업을 경영하는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두다리를 잃고 절망 가운데 있는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분은 젊음을 불태워 기업을 일구고 재산도 남부럽지 않게 모으고 많은 표창도 받아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 불행을 마주한 것이다. 그가 병상에서의 한 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고 전의 건강한 두 다리를 돌려받을 수 있다면 나의 전 재산을 다 주고도 바꾸겠노라“고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당연하게 그리고 내 신체의 부분이라고 단순하게 여겼던 두 다리를 한순간에 잃고 난 뒤의 고백이다. 건강이나 친구를 잃거나 떠나보낸 뒤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고들 한다. 소유의 넉넉함 보다 세상의 이름이나 명예 보다 나와함께 있는 이 작고 소소한 것이 더 소중하다는 증거이다.
이순을 넘으면서 불행은 남과 비교하면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남의 떡이 커 보일 때가 있다.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장이다. 대개 비교할 때는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이나 더 많은 소유 아니면 소위, 잘 나간다고 하는 이들과 비교하게 된다. 자녀의 성적이나 직업 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남들과 비교하며 부러워하고 때로는 열등의식을 느끼고는 한다. 자녀의 장점이나 강점은 찾아내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하고 비교하위에 있는 것들만 단점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자성이 일게 되는 것이 한 갑자를 돌아서는 시기쯤 아닌가 싶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기에는 크고 높고 돈만 보이지만, 은퇴 이후에는 목표도 꿈도 많이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주변도 둘러보고 뒤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적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때 젊은 시절엔 보이지 않고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이 보이고 고통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도 본다. 나보다 훨씬 가진 것도 적고 힘들고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주변을 종종 만나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가진 것이 많고 호강스럽게 살고 있는가 하는 미안함마저 들 때가 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나 없는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이 주인공이다. 내 곁을 떠나거나 잃어버린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지금이 중요하고 오늘이 소중하듯이 나에게 남겨진 것이 소중하다. 아주 소소한 일상이라도 나에게 남겨진 것이 나이고, 남아 있는 것들이 소중한 것 아닌가. 나에게 남겨진 것을 사랑해야겠다. 바깥에 보이는 것들과 세상 유혹에 휘둘리지않는내안에견고한지지
대 하나 세워 두어야겠다. 친구의 말처럼 가진 것 별로 없지만, 좋은 친구가 있고 초라한 내 모습까지도 따뜻하게 반겨 주는 고향이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사지가 멀쩡하니 살아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있느냐며 반문하는 친구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