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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전북 농촌의 소멸,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의 역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5.06 09:28 수정 2026.05.06 09:28

화려한 꽃들과 웃음소리가 가득해야 할 5월. 어제(5일)는 제104회 어린이날이다. 도내 곳곳의 유원지와 행사장은 나들이객들로 붐볐고, 지자체마다 아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뒤 우리가 마주한 전북의 현실은 ‘역설’ 그 자체다. 인파가 몰린 도심의 행사장 너머 전북의 농촌 마을 대다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어린이날’은 있지만 정작 ‘어린이’는 사라지고 있는 전북 농촌의 황량한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통계청과 전북자치도에 따르면 도내 일부 군 단위 지역의 합계출산율은 마지노선인 1명 선을 무너뜨린 지 오래다. 연간 출생아 수가 두 자릿수에 불과한 지자체도 속출하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 절벽’은 곧바로 교육 현장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전북 내 초등학교 중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수십 곳에 달하고, 폐교 위기에 처한 작은 학교들은 마을의 소멸을 알리는 전조등이 되고 있다. 아이가 없는 마을에 젊은 부모가 들어올 리 없고, 부모가 없는 마을에 아이가 태어날 리 만무하다.

더욱 뼈아픈 지점은 이러한 소멸의 징후가 단순히 ‘아이의 숫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농촌 지역의 아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과 ‘학습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갑자기 아이가 아파도 달려갈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없어 인근 대도시까지 한두 시간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 ‘원정 진료’는 일상이다. 기본적인 보육 시설조차 수익성을 이유로 사라지거나 국공립 시설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다. 국가와 지자체가 입으로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외치지만, 정작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태어난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와 교육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며 우리는 ‘전북형 자치’를 통한 지역 소멸 대응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현금 살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출산 장려금 몇 백만 원을 더 준다고 해서 젊은 부모들이 인프라가 전무한 농촌으로 향하지 않는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법에 명시된 교육 특례와 농생명 산업 특례를 결합하여, 농촌에서도 도시 이상의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전북형 교육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작은 학교를 단순히 통폐합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거점이자 디지털 교육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과감한 발상이 필요하다.

지자체 또한 단순히 예산을 집행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농촌의 소멸은 일자리와 주거, 의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고도의 복합 방정식이다. 전북자치도가 유치하고 있는 이차전지, 바이오 등 신산업의 결실이 도심권에만 머물지 않고 배후 농촌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까지 추진해야 한다.

어린이는 전북, 대한민국의 미래다. 농촌은 전북의 뿌리다. 미래가 사라지고 뿌리가 썩어가는 땅에서 어떤 번영도 기대할 수 없다. 5월에 우리의 역할이 일회성 축제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년 어린이날에는 전북의 모든 마을에서 다시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무너진 보육과 교육의 사다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전북의 행정과 정치권, 그리고 도민 모두가 이 준엄한 사명 앞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멸의 시계는 우리가 망설이는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돌아간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워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의 역설은 끝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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