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비수도권 최초로 누적 벤처펀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상징적 기록이지만, 현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단순한 ‘규모 달성’과는 결이 다르다.
투자 유치에 그치지 않고 기업 이전, 고용 증가, 매출 확대, 나아가 코스닥 상장까지 이어지며 전북 경제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가 민선 8기 들어 본격 추진한 ‘전북 혁신성공 벤처펀드’는 누적 31개 펀드, 총 1조 994억 원 규모로 조성됐다.
민선 7기까지 2,105억 원에 그쳤던 펀드 규모가 3년 만에 4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 도 출자 약정액은 896억 원이지만, 정부 재정과 민간 자본이 함께 유입되면서 투자 여력은 배 이상 확대됐다.
전북 펀드의 특징은 ‘지역 환원 구조’에 있다. 단순히 펀드를 조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도 출자액의 2배 이상을 도내 기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현재 확보된 도내 의무 투자 재원은 1,860억 원이며, 이 가운데 1,033억 원이 이미 집행됐다. 목표로 설정했던 2,000억 원 투자 역시 조기 초과 달성이 확실시된다.
투자 효과는 개별 기업의 성장 사례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반도체 검사 장비 전문기업 아이에스피는 전북 펀드 20억 원을 포함해 총 5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역 기업이 대규모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넘은 사례다.
고용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이차전지 전문 기업 에너에버배터리솔루션은 전북 펀드 15억 원을 마중물로 삼아 총 4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2022년 완주군에 공장을 설립했다.
전체 직원 70명 가운데 50여 명을 지역 인재로 채용하며, 투자→설비→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전북 펀드는 ‘기업 유치 수단’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그린바이오 기업 팡세는 전북 펀드를 계기로 본사와 공장을 수도권에서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로 이전했다. 15억 원의 도 펀드를 포함해 총 8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이 회사는 현재 양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상장 사례다. 차량 보안 솔루션 기업 페스카로는 군산에 기업부설연구소를 두고 전북 펀드 10억 원을 시작으로 총 3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뒤, 지난해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연구소 기반 기술 기업이 지역을 거점으로 성장해 상장까지 이른 사례로, 전북 투자 생태계의 ‘도달 지점’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현재 타타대우, 전북자치도 등과 협력하며 지역 자동차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숫자로 확인되는 지역 경제 효과도 분명하다. 전북 펀드 투자 기업 가운데 37개 기업의 고용 인원은 811명 늘었고, 31개 기업의 연 매출은 1,860억 원 증가했다.
13개 기업은 투자와 연계해 전북으로 이전하거나 신규 정착했다. 지방 소멸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벤처 투자가 기업 이탈을 막고 지역에 사람을 남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북자치도는 1조 원 펀드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있다.
도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펀드 조성 자체가 아니라, 투자–성장–상장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구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라며 “기업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투자 장벽을 낮추고, 민간 자본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송효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