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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괴테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한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2.24 13:18 수정 2026.02.24 01:18

이택규 전)편집위원회 부위원장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스즈키 유이의『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덮으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문장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사랑에 대한 시적인 정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책 속 인물들이 괴테의 문장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이 문장은 단순한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은 카오스나 혼동이 아닌 스며듦이다.
서로 다른 존재를 하나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한 채 서로의 세계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책 속 인물들은 괴테의 문장을 두고 누가 더 정확히 이해했는지, 누가 원전에 가까운지 다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치열한 논쟁은 하나의 진실을 드러낸다. 텍스트는 소유될 수 없으며,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괴테는 이미 많은 것을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닫힌 문장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삶과 만날 때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오래전 가슴에 새겼던 문장을 떠올렸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
독만권서는 지식을 축적하라는 말이 아니다.
행만리로는 단순히 여행을 많이 하라는 뜻도 아니다.
읽고, 걷고, 사유하라는 요청이다.
책 속 문장을 우리 삶의 길 위로 가져오라는 뜻이다.
읽음이 머리에만 머물면 그것은 단순한 정보에만 그친다.
경험이 성찰 없이 지나가면 단순한 체험으로 남는다.
그러나 읽은 것이 삶과 만나 스며들 때, 비로소 우리에게 우리의 언어로 남게 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장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모든 것은 말해졌지만 내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할 때 그 의미를 가진다.”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말이 있다. 사랑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배움에 대해서도... 괴테도 말했다. 철학자들도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그 말들을 반복하며 살아갈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복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
그 말이 내 안에 스며들어 내 삶으로 드러날 때, 전혀 다른 나의 문장이 된다.
독만권서 행만리로도 결국 스며듦의 철학이다.
타인의 언어가 나의 경험과 만나고,
읽은 문장이 우리가 걸어온 길 위에서 다시 숨 쉬게 되는 그때 괴테는 더 이상 옛 시대의 문호가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대 문호가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세계에 조용히 스며드는 과정이다.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 또한 그렇다. 완벽히 이해하려는 집착 대신, 나의 삶과 조용히 만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배움의 자세일 것이다.
괴테는 이미 많은 것을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읽고, 걷고, 사유하고 다시 말하라.
그리고 그 말이 삶으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라.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된다.
배움은 인용이 아니라 변화이며,
지식은 소유가 아니라 스며듦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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