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효순 수필가
102세 된 시어머니 영정사진 앞에서 82살 며느리가 통곡을 하네요. 57살 손부가 우는 시어머니를 붙잡고 따라 웁니다. 차마 아무도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고부 앞에서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오래전엔 백두 살 시어머니도 팔십 며느리도 청춘이었겠지요. 같은 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란히 아기를 낳아야 할 만큼 젊었으니까요. 그래도 둘은 시어머니인 듯 친구인 듯 별 근심 없이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예고가 없지요. 더없이 따뜻한 봄날 큰 아들이 어린 세 자식을 남겨놓고 하루아침에 그것도 타인의 실수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둘이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 입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와 남편을 잃은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크냐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글쎄요, 부모와 남편은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어미도 어린 자식들과 혼자 세상을 이겨내야 하는 젊은 여인의 삶도 힘들겠지요.
어떻게든 둘 다 거친 세상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아들과 손자가 10살 때입니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물은 생명입니다.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사람들은 논 옆에서 떠날 수 없었지요. 할머니가 아들에게 물꼬를 보고 오라고 삽을 주었답니다. 한데 아들은 금방 내려와서 옆 논 할머니 때문에 물을 댈 수가 없다고 했다네요. 그 말을 들은 손자가 자신 있게 내가 대고 오겠다고 올라갔답니다. 한 나절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손자가 궁금하여 올라가 보니 옆 논 할머니와 손자는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옆 논 할머니는 손자 하나 잘 두었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랍니다. 손자가 올라와서
“할머니! 위에서 내려오는 물은 할머니네 물도 우리 물도 아닙니다. 논에 물은 들어가야 쌀밥을 먹을 수 있으니 할머니 논으로 절반 우리 논으로 절반 공평하게 나눕시다.”
하고서는 거침없이 물을 갈라 넣어 아무 말도 못하고 지켜 보았다네요. 자리를 뜨면 저 녀석이 틀림없이 우리 논 물길을 막아 버릴 것 같아 갈수도 없었다면서요.
할머니는 자식보다 손자를 더 많이 기대하고 사랑했습니다. 좋은 것은 손자에게 좋은 음식도 손자 앞에 더 많이, 그렇게 당신에게 손자는 먼저 가버린 아들의 두 배였습니다. 드디어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마친 손자는 며느리가 있는 도시로 나가 오손도손 할머니의 바람대로 잘 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에 묻은 자식 내려놓고 손자가 결혼하는 날 춤을 추었지요. 며느리도 결혼하여 잘 사는 자식 보는 재미에 혼자 사는 설움을 잊어버릴 만 했는데 신은 왜 이들 고부가 조금이라도 행복한 것을 용납하지 않은 걸까요. 그렇게 보기조차 안쓰럽고 대견했던 장손이자 며느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제 겨우 삶의 무게에서 가벼워지려 하는데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두고 세상을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이 세 고부는 붙잡고 울지도 못했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도 착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거지가 오면 입던 옷도 벗어주던 할머니, 남의 것이라고는 쌀알 하나도 욕심내지 않던 며느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알뜰하게 살던 손부,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 여인들이 남편과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생의 죄라한대도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며느리와 손부의 일생도 가엾지만 할머니의 일생은 날마다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멍에를 지어야 했습니다. 젊어서는 자식들과 손자들 먹이고 가르치느라 차라리 괜찮았을 것입니다. 늙어 더 이상 당신의 힘이 필요치 않는 텅 빈 집에서 홀로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맏아들과 장손이 없어 갈 곳이 없다는 당신의 그 심중을 알았어도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일을 그만 하시고 자식들 마음 좀 편하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어느 날 간곡하게 물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근디. 가만히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몰라야. 일허다 보면 어딘가 아플 것 아니냐. 글먼 어서 끝내고 가고 싶어 그런다….”
죽어야 잊을 수 있는 고통 어떻게 하든 빨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 했는데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96세에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요. 요양원 생활 6년이 지나자 고조할머니까지 되셨습니다. 가끔 세 고부는 할머니의 요양원에서 만나 서글픈 웃음이지만 서로를 위로하곤 했습니다. 힘든 세월 잘 견뎌 왔다면서요.
그래요. 산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가끔은 웃고 살 수 있어요. 먼저 가버린 남편도 가슴에 묻었던 자식도 슬그머니 잊힌 날들이 있어요. 남은 가족, 따뜻한 이웃과 서러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둘러보면 나를 닮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억지로라도 웃고 살다보면 정말 괜찮은 날들이 많다는 것을 이 세 고부를 보면서 참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늘 행복할 수도 늘 불행 할 수만도 없는 것 같아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오늘의 상처가 어떤 과학의 힘으로도 내일 다시 일어나지 않다는 것, 살다보면 치유되는 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말씀하시던 할머니, 일 년 전부터 말 문 닫고 귀 닫고 사람 알아보지 않고 그렇게 갈 준비를 했습니다. 찾아오는 자식들 온기를 느끼며 겨우 눈으로 말하다가 올해 설날을 하루 앞두고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 무겁던 짐 벗어나기를 그토록 원하셨으니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영정 속에서 웃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며늘아 손부야 그만 울거라. 내 먼저 가서 기다리마. 그때는 우리 모두 만나 헤어지지 말자. 이제 그만 울거라. 보기도 안타까웠든 내 며늘아! 내 손부야.!”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해와 달이 떴다지고 꽃이 피고지고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가 썩어 새로운 싹이 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자 사람의 순리인 것을,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잠시 헤어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요. 참으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억척스럽게 사셨던 지난 세월 다 벗어버리고 훨훨 어디든지 가시옵소서. 부디 영면하소서. 힘들면 어서 가시라고 빌었던 못난 딸을 용서하옵소서. 다시 태어 난다해도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