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규
대전경찰청 안보자문위원, 한국수상안전협회 부회장
2026년 2월 24일 화요일
오늘은, 미루지 않기로 했다
― 『나의 완벽한 장례식』이 남긴 한 그릇의 용기
조현선 작가의 『나의 완벽한 장례식』을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문장이 오랜 시간 내 가슴을 멍하게 했다. 그리고 어느새 맑은 물방울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삼종합병원 매점 주인 미수. 그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말한다.
“나는 괜찮아요. 이제 행복해요.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한 문장은 늦은 용서였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처럼 들렸다. 우리는 늘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사랑을 ‘미루는’ 데 익숙하다. 시간이 더 있을 거라고, 다음에 하면 된다고, 언젠가는 충분할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데『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그런 우리의 착각을 가장 조용히 무너뜨린다.
30년 전, 나의 아버지는 종종 물으셨다.
“우리 좋아하는 짬뽕으로 같이 점심 할까?”
나는 늘 바빴다. 아니, 그렇게 많이 바쁜 것은 아니었다. 신입사원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안 돼요, 다음에요.”
그 ‘다음’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 한마디는 세월이 흘러도 가슴 한쪽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그때 한 시간만 냈더라면, 짬뽕 국물 한 숟갈을 아버지와 함께 떴더라면, 그 평범한 점심은 평생의 위로가 되었을 텐데.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미루고 있는 사랑이 없느냐고.
미루고 있는 말이 없느냐고.
어제 나는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홀로 계신 어머니께 아내와 함께 달려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추어탕을 한 그릇 함께했다. 달걀말이도, 고추전도 시켰다. 상다리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어머니는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드셨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고마웠다.
식당을 나선 어머니가 꾸부정한 다리로 집으로 걸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다음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민물매운탕을 먹어야겠다.
비록 함께할 수는 없지만, 그 국물 속에 아버지의 웃음을 떠올려 보고 싶다.
삶은 거창한 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은 마지막 순간에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식탁에서, 오늘의 전화 한 통에서, 오늘의 짧은 동행에서 완성된다. ‘완벽한 장례식’이란 어쩌면, 남은 이들이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 밝다.
불그스름한 볼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이 햇살에 비치어 반짝이며 내 가슴속으로 흘러간다.
아버지와 내가 좋아했던 짬뽕 국물처럼,
어머니가 어제 비워낸 추어탕 그릇처럼,
사랑은 그렇게 소박한 자리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거창한 효도를 하지 못해도 좋다. 대단한 약속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오늘 한 번 더 묻는 것이다.
“같이 밥 먹을까?”
그리고 그 물음에 “그래요”라고 대답하는 용기.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선택은
성공이 아니라 동행이고,
속도가 아니라 멈춤이며,
내일이 아니라 오늘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전화 한 통을 걸어보자.
함께 밥 한 끼를 나누자고...
언젠가 우리의 마지막 날에
사랑을 미루지 않았다면
그것으로도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