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깊은 상흔 중 하나인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는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차가운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304명의 생명 앞에 우리 사회가 했던 약속은 단 하나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라는 성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날의 아픔은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공언했던 ‘안전한 대한민국’은 과연 전북특별자치도의 일상에서 온전히 구현되고 있는지 엄중히 되묻게 한다.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 체계는 외형적으로 몰라보게 성장했다.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가 재편되고, 각종 매뉴얼이 보강됐다. 학교 현장에서는 체험형 안전 교육이 정례화되기도 했다. 전북자치도 역시 ‘안전 전북’을 도정의 핵심 가치로 내걸고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시스템의 정교함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재난들은 여전히 우리가 세월호의 교훈을 체득하지 못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후 위기는 이제 일상화된 재난이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반복되는 대형 산불과 영농기 가뭄, 그리고 여름철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와 도심 침수는 더 이상 ‘이례적인 기상 현상’이 아니다. 특히 노후화된 전주·익산·군산의 국가산업단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유해 화학물질 누출 사고나 노후 설비에 의한 화재 사고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지자체의 대응은 늘 사고 뒤에 뒤따르는 ‘사후약방문’에 그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안전 불감증’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쏟아내는 화려한 개발 공약과 토목 사업의 청사진 속에서 ‘시민의 안전’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효율’과 ‘속도’, ‘이윤’을 위해 ‘안전’을 뒷전으로 미뤘을 때 어떤 참혹한 대가가 뒤따르는가였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북의 안전 인프라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기후 재난으로부터 도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대결이 아쉽다.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사후 대응 중심에서 ‘선제적 예방’으로, 하드웨어 확충에서 ‘시민 참여형 안전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도내 곳곳의 산재한 위험 시설물에 대한 전수 조사는 물론,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스마트 재난 감시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 약자에 대한 배려다. 인구 소멸 위기 속에서 홀로 거주하는 어르신들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재난 상황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촘촘한 ‘안전 복지망’을 구축하는 것이 전북자치도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자치의 모습이다.
세월호 12주기를 맞이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추모관에 헌화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내 가족과 이웃이 걷는 거리가 안전한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학원 버스가 법규를 준수하고 있는지, 우리 일터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는 것이 진정한 추모다. 도민의 생명권을 보장할 구체적인 ‘안전 로드맵’부터 점검하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 12년 전 그날의 눈물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은, 오늘 우리 곁의 위험 요소를 단 하나라도 줄여나가는 실천에 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안전에 있어 ‘특별’한 지자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