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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칼럼

현수막의 구호, 문자의 유혹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4.16 12:26 수정 2026.04.16 12:26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 후보자들이 보내는 지지 호소 문자가 폭주하고 있다. 광역 단체장부터 교육감, 기초의원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차례, 많게는 10건이 넘는 홍보성 문자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거주지와 무관한 타 지역 후보자의 메시지까지 뒤섞이며 시민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스팸 문자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문자 공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문자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후보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내용을 정교하게 다듬어 발송한다. 특정 정당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지지를 호소하거나, 민생지원금·농민수당·기본소득 같은 금전성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일부 후보들은 경제 위기와 지역 침체를 명분 삼아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한다. 얼핏 보면 서민을 위한 배려처럼 보이지만, 지방 재정의 현실을 외면한 채 표심만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서 유권자들은 자문해 보아야 한다. 후보자가 정교하게 만든 문자 한 통만 보고 과연 마음이 끌릴 것인지 말이다. 물론 그 문자를 통해 후보자의 이름 석 자 정도는 머릿속에 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와 달콤한 문구에 현혹되어 지역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 같은 문제는 거리의 현수막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역 발전’, ‘일자리 창출’, ‘기업 유치’와 같은 문구는 누구에게나 호감이다. 그러나 그 문장들을 곱씹어 보면 구체성이 희박하고, 실현 가능성에 대한 설명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마치 정치인 개인의 재산으로 시혜를 베푸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이는 공공재정을 ‘선물’로 오인하게 만드는 위험한 인식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은 정치인의 쌈짓돈이 아니다. 그 재원은 국민의 노동과 땀으로 일군 소중한 세금이다. 정치인은 이 자금을 위임받아 집행하는 관리자일 뿐, 선심을 쓰는 기부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후보들은 공공 정책을 마치 개인적 시혜 인양 포장하여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현수막 정치가 정책 대결이 아닌 비방과 혐오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를 향한 원색적인 공격과 비난이 난무하면서 정작 공약은 실종되고 감정적 대립만 남았다. 이는 민주주의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를 심화시키는 꼴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과의 사유화’다. 기업 유치나 지역 경제 활성화는 오랜 시간 축적된 지역 인프라와 주민들의 노력, 다양한 사회적 자산이 결합된 결실이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은 이를 오로지 개인의 역량인 양 포장하여 홍보하곤 한다. 성과는 제 공으로 돌리고 실패는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책임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 쏟아지는 공약 중에는 대규모 개발이나 막대한 국비 확보를 약속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설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이런 약속은 빌공자를 쓴 ‘공약(空約)’에 그쳐 무산되거나,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채무를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유권자가 달라져야 한다. 문자 메시지와 현수막의 화려한 문구에 현혹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무엇을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을 믿기보다, ‘어떤 재원으로’, ‘어떤 방식으로 실행하며’, ‘지속 가능성은 있는가’를 철저히 따져 묻는 성숙한 판단이 필요하다. 재원 근거 없는 공약은 결국 우리가 짊어져야 할 부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다. 유권자의 표를 대가로 선심성 혜택을 약속하는 행위는 공동체의 미래를 저해하는 일이다. 현수막과 문자 뒤에 숨은 시혜적 태도와 증오의 언어를 거둬내고, 후보의 책임감과 실행력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화려한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면의 재정적 현실이다. 이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권자의 엄중한 심판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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