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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국회의 ‘지각 선거구 획정’, 풀뿌리 민주주의 모독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입력 2026.04.28 10:06 수정 2026.04.28 10:06

전북특별자치도의회가 28일 시·군의원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조례안을 최종 의결했다. 6.3 지방선거를 불과 30여 일 앞둔 시점이다. 최악의 사태는 피했으나,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의 오만과 무책임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심각하게 흔들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다. 지방자치를 중앙 정치의 부속물로 여기는 국회의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이 빚어낸 참사다.

선거구 획정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설계도다. 인구 변동에 따라 ‘표의 등가성’을 확보해 한 표 한 표가 어디서나 동등한 가치를 지니도록 하고,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3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 전 15개월까지, 시·도의원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 전 6개월까지 완료하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이번에도 법이 정한 시한을 철저히 무시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매몰되어 샅바싸움을 벌이는 동안, 지방선거의 시계는 멈춰 섰고 유권자와 후보자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는 지방자치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국회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서야 뒤늦게 선거구를 결정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지역으로 전가됐다. 전북자치도의회가 조례안을 의결하기까지 겪은 시간적 압박과 행정적 혼란은 모두 국회의 태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지방의회를 중앙 정치의 하부 기관이나 종속물로 취급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여의도 정치권의 시각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사고에 갇혀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도민을 비롯한 국민이다.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은 채 진행된 예비후보 등록 기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유권자와 후보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면서 ‘깜깜이’ 상황에 놓였다. 유권자의 알 권리와 후보자의 공정한 경쟁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민주 선거의 기본 원칙에도 반한다.

선거구 획정의 본질은 인구 변동과 법 개정 사항을 충실히 반영해 민의를 온전히 담아내는 데 있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게 유리한 ‘게리맨더링’을 차단하고, 소수 의견까지 균형 있게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 지연은 이러한 민주적 숙고의 시간마저 빼앗아 버렸다. 시간에 쫓겨 급조된 획정안이 지역의 특수성과 주민 생활권을 얼마나 세밀하게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전락한 선거구는 전북의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역 간 갈등만 키울 우려가 크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도민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변경된 선거구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후보자들 역시 지역의 실질적인 자치권을 강화할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

국회는 더 이상 지방선거를 자신들의 정쟁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매번 반복되는 선거구 획정 지연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독립적이고 실권 있는 선거구 획정 기구를 설치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는 중앙 정치의 시혜물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 권리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계를 멈춰 세웠던 중앙 정치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리고, 전북의 미래를 도민 스스로 결정하는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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