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6월3일 지방선거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총선만큼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기초의원,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광역단체장, 비례대표, 교육감 게다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실시되는 지역에서는 모두 7매의 투표지에 기표를 해야 한다. 재보궐이 없는 지역에서도 6매 기표다. 누구를 찍겠다고 맘먹고 투표소에 갔더라도 막상 여러 장의 투표지를 받고 보면 그 사람 이름이나 번호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한참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이후 이런 선거를 모두 합치면 100여 차례는 시행 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헌법상 독립기관인 중앙선관위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선거날짜가 정해지면 내무부 중심으로 선관위를 만들어 두어달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가 선거 종료후 해산하는 형태였다. 1987년 개헌 때 중앙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발족하였는데 대법관 중에서 위원장을 지명하여 그 위상을 높였다.
지금은 막대한 예산과 매머드 인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되어 선거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야당의 불만과 불평이 여과 없이 노출되어 갈등을 빚을 때가 많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관위가 어떤 정당에 편향되는 모습이 없었는지 조용해서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투표 당일 생각지도 못한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빚으며 전체 선거를 뒤흔들어 놨다. 투표용지는 어떤 경로로 어떤 인쇄소에서 인쇄하여 투표장으로 배달되는지 일반 국민은 알지도 못하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지극히 사무적인 행정 처리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투표용지는 당연히 유권자 수에 맞춰야 한다. 과거의 투표 상황에 비춰 50%만 인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투표율이 높은 호남 지역은 많이 찍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적게 인쇄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임의 행정 처리다.
유신 시절에 어느 투표소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투표지 과잉 사태가 있었다. 수개표로 진행된 개표장에서 어떤 여당 후보에게 찍은 투표지가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수보다 훨씬 많았다. 투표 참여자 명부가 엄존하기에 이 숫자보다 많다는 것은 무더기 부정투표가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당선자로 발표되기는 했지만 유권자의 열화같은 항의에 몰려 결국 국회의원은 그것으로 끝났다. 당시 나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할 때였는데 민주 교도관으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을 추방했던 혈기(血氣)가 끓어오름을 어쩌지 못했다. 무더기 투표는 부정선거의 기초다. 이런 부정의 사례는 자유당 정권에서 무소불위로 자행했던 행태였다. 유명한 정읍 환표사건도 그 한 예(例)다. 당시 정읍경찰서 지서에서 근무하던 박재표순경이 투표장에서 개표장으로 이송하는 차량에서 따로 준비한 투표용지를 이송중인 개표함에서 바꿔치기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폭로한 사건이다. 그는 즉각 구속되어 감옥살이를 했지만 부정을 폭로한 용기는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이처럼 투표용지는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송파구 일대 등 17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하여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를 방해한 사건은 그냥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더구나 유권자 수의 50%만 비치했다는 것은 변명도 아니다. 선관위가 유권자의 참정권을 유린한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중차대한 과오다. 투표중지나 재투표 실시와 같은 사유가 되는지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사안이지만 왜 그런 사태를 빚었는지에 대해서는 엄정 조사가 필요하다. 명명백백 진상을 규명하여 전체 국민의 의구심부터 풀어야 한다. 50%만 보냈다고 하는데 전국 선거에서 50%만 투표에 참여하는 선거구가 과거에 몇이나 있었을까. 여유롭게 인쇄하면 비용이 많이 들기에 예산을 아끼려고 그랬다고 하면 혹시 변명이 될까. 투표지 과잉이나 또는 부족이나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다. 선관위 관계자는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국민의 분노도 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