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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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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같이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경우는 참 드믄 것 같다. 오늘같이 소 낙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고향이 생 각나는 파전이나 부침개, 수제비, 칼국 수 같은 음식이다. 서울에서는 비가 오 는 날이면 으레 파전 골목 입구부터 문 전성시가 되거나, 직장인들이 몰려있 는 동네라면 칼국수 집에 길게 줄을 선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똑같이 이런 음식을 떠올린다는 사실이 때로 신기하기도 하다. 참 배웠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자기과시를 하기 좋아하여 어디에다 배운 것을 갖다부치는 것을 참 좋아한 다. 어느 날 방송을 보는데 어떤 배웠 다는 사람이 나와서 우리나라 사람들 이 비 오는 날 파전 같은 부침개를 좋 아하는 이유가 바로 비가 떨어지는 소 리와 전을 기름에 튀기는 소리의 주파 수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소 개되고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소 위 지식인이라는 배운 사람들이 근거 도 없이 아무 이야기나 서로 이어 붙여 가짜 이야기를 지어내도 통하는 시대 였다. 이는 곧 부침개를 해 먹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를 업신여겨서 하는 말 이다. 모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아도 똑 같은 소리를 한다. 사실 과학적으로 두 주파수가 일치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우리 음식에 허황되고 현란한 주장을 붙여야만 하는 걸까? 그러나 음식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호도하 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여기에 어 설픈 과학까지 언급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먼저 파전이나 부추전은 튀김 음식 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명확히 해야겠 다. 우리나라는 기름이 많지 않았기 때 문에 튀김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참 기름이나 들기름을 조금 넣어 열전달 을 극대화하여 맛있게 지져 먹는 음식 이나 부쳐 먹는 음식이 발달하였다. 이 것이 바로 부침개였다. 우리가 부침개 를 즐겨 먹던 시기는 대부분 초가집 이고 흙마당이어서 빗소리는 그리 크 지 않았다. 그리고 옛날에는 프라이팬 과 같은 팬은 없었고 솥뚜껑을 엎어서 파전이나 부추전을 부쳐 먹었다. 기름 에 튀기는 소리, 프라이팬, 더군다나 주 파수 운운하는 것은 사실에 맞지 않고, 매우 비과학이다. 특히 음식업에 종사 하는 사람들도 아니면서, 음식 전문가 또는 미식가라고 칭하는 이들이 서슴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볼 때면 씁쓸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비 오는 날이면 파 전이나 부추전, 수제비나 칼국수가 생 각나고 이를 즐겨 먹을까? 우리나라 음식 역사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여유 가 있어 생긴 ‘낭만의 역사’가 아니라 ‘삶의 역사’였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는 산이나 들에 나가 농사를 짓거나 수 렵을 하는 농경의 역사다. 따라서 일 할 때 날씨가 매우 중요했다. 비가 오 지 않아야 밭이나 논에 나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비가 오거나 하루 종일 비가 오면 들에 나가 일할 수가 없다. 이는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 지다. 농사철에 갑자기 비가 오고 밖에 서 일을 못하게 되면 동네 정자(亭子)
나 어느 집으로 마실을 나가 삼삼오오 서로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 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야말로 노변정담(爐邊情談)의 문화다. 그러다 가 출출해지면 당연히 먹을 것이 생각 나고 별다른 준비 없이도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수제비나 칼국수, 또는 파전이나 부추전 같은 부침개였다. 파 나 부추는 어디에나 있다. 특히 부추는 장마철에도 꿋꿋이 잘 자라서 집안 텃 밭이나 뜰에 흔히 나 있는 걸 바로 뜯 어다가 있는 밀가루에 섞어 부쳐 먹으 면 된다. 밀가루가 없으면 밀을 곧장 갈아서 밀가루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만들기 쉽고 이웃과 함께하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더구나 비가 주로 오는 장마철은 밀을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 은 때여서 밀가루를 쉽게 구할 수 있었 다. 부족하나마 밀농사로 수확한 밀을 직접 갈아 먹기도 했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산업화가 시 작되면서 농경 역사를 경험한 세대들 이 대거 도시로 나가고, 도시로 나간 사람들이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것이 어릴 적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파 전이나 부추전, 수제비, 손칼국수였다. 아련한 고향에 대한 그리운 추억도 함 께 먹은 셈이다. 음식의 역사, 문화는 평범한 사람들 의 소중한 삶의 경험과 일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릴 적부터 맛보았던 음식 과 그 맛, 그리고 가족과 함께 먹을 때 행복했던 기억은 얼마나 소중할까? 일 상의 삶 속에서 문화가 나오는 것이지, 양반들과 지식인들의 현란한 언어유희 에서 음식 문화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