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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안 출신의 국악계 대모
수도 서울의 중심인 종로구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지역이다.
종로에 살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 시대의 문화‧예술인 중엔 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인 홍성덕 명창도 있다.
홍 명창은 부안 출신이다. 모친은 김옥진 명창. 김옥진 명창은 일제강점기 때 판소리, 남도민요, 신민요 등의 음반을 냈다. 물론 유성기 음반이다.
홍 명창의 선친은 명고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옥내극장인 협률사 단장을 지낸 홍두한 선생이다.
육자배기의 대가인 모친, 명고수인 선친 사이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홍 명창은 어려서부터 유명 명창들의 소리를 듣고 자랐다. 홍 명창은 어머니로부터 춘향가와 긴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등을 배웠다. 말 그대로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우리 소리, 우리 가락을 배운 셈이다.
부안의 소리꾼인 추담 홍정택 명창. 홍 명창의 숙부다.
홍 명창은 숙부인 홍정택 명창의 소리도 배웠고, 동편제의 명인 강도근 명창과 오정숙 명창의 사사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판소리 세계를 만들어냈다.
홍 명창은 1981년 제8회 전국남원명창대회에서 장원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93년엔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을, 1994년엔 KBS 국악대상을 수상했다.
홍 명창은 여성국극의 매력에 반해 1986년 서라벌국악예술단을 창단했다. 홍 명창이 이끌던 이 예술단은 국립극장에서 ‘성자 이차돈’을 공연했고, ‘88서울올림픽’ 때는 축하공연을 가졌다.
995년 광복 50주년 기념공연 때는 ‘별 헤는 밤, 윤동주’를, 2002년 한‧일월드컵 축하공연 때는 ‘자유부인’을 무대에 올렸다.
홍 명창의 예술단은 뉴욕 카네기홀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유수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평생을 국악계에 몸을 담은 홍 명창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국악계의 대모다.
■ 제25‧26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
홍 명창은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여성국극의 역사는 1948년 시작됐다.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한 것이 여성국극의 뿌리다.
박녹주 명창, 김소희 명창, 박귀희 명창, 임춘앵 명창 등 우리나라 국악계를 대표하던 여성 소리꾼들이 1948년 10월 ‘옥중화’라는 작품으로 서울 시공관에서 창립공연을 가졌다.
여성국극은 여성들만이 단원이었기 때문에 여성국악인들이 남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일본의 ‘다카라쓰카(寶塚)’와 달리 우리네 여성국극은 고전적 표현방식인 창을 사용한다.
1950년대 말엽부터 급격히 쇠퇴의 조짐을 보이던 여성국극은 후진양성 실패, 텔레비전 등장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홍 명창은 이런 여성국극 부활에 주역을 맡았다.
홍 명창은 2012년 제25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는 국악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이다. 권위가 있는 단체다. 한국국악협회는 국악의 보존과 육성, 연구, 국악인 양성, 국악의 국제교류 등을 추진할 목적으로 1961년 설립됐다. 전국 각 시‧도에 지회 및 지부가 설립돼 있다. 대한민국국악제를 비롯해 전국민요경창대회,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등의 행사를 개최해 왔다.
100만 국악인을 이끄는 국악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면서 홍 명창은 명실상부한 ‘국악계의 대모’로 우뚝 섰다.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맡은 이후, 홍 명창은 전통문화예술을 지키고, 묵묵히 국악인들을 돌보는 일에 예전보다 더 많은 공을 들였다.
민간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담당했다. 홍 명창은 평생동안 국악계에 몸을 담고, 국내 공연 수백 회, 해외공연 수십 회를 가졌다. 이런 과정에서 홍 명창은 국악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다. 국악을 지구촌에 널리 알려 한류붐도 조성했고, 국악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르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다.
홍 명창은 한국국악협회 제25대 이사장에 이어 제26대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한편, 홍 명창은 전북도립예술단 단장, 광주시립국극단 단장,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 4대째 이어지는 국악의 핏줄
어머니 김옥진 명창으로부터 물려받은 홍 명창의 국악 유전 인자는 고스란히 후대로 이어졌다.
딸 김금미 명창은 2007년 제33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판소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선망하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명창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 도전한 것도 아니고, 단 한 번에 영예를 안아 세간의 큰 부러움도 샀다.
김금미 명창은 고등학교 때부터 임이조 명인 같은 유명 무용가에게 무용도 배웠다. 무용으로 전주대사습이나 KBS국악대경연대회에 서 입상도 했다.
성창순 명창 같은 당대 최고의 소리꾼 등으로부터 판소리도 배워서 소리의 기초를 일찍부터 단단하게 익혔다.
김금미 명창은 여성국극이 들어와 부활될 때, ‘햇님달님’이라는 작품에서 가연역을 맡았다. 이때 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그 뒤 ‘춘향전’이나 ‘황진이’ 등 작품에서 춘향이나 황진이 같은 주역을 맡았다. 호주,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공연도 많이 다녔고, 큰 성과도 거뒀다.
어머니 홍 명창이 여성국극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작품을 제작하고 단체를 이끌었던 덕분에 김금미 명창은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다. 처음 접하는 배우였지만 김금미 명창은 여성국극에서 주연을 맡는 등 상당한 재능을 발휘했다.
연기, 춤, 소리를 거침없이 해내는 소리꾼 집안 김금미 명창의 유전자는 딸 박지현 씨에게 이어졌다. 박지현 씨는 홍 명창의 외손녀다.
이런 내력이 있어 홍 명창의 집안은 4대를 잇는 판소리 가족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 길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 험난한 길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리를 다져 온 홍 명창이지만 남다른 재능을 물려받은 딸에겐 판소리를 적극 권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 축하공연
홍 명창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지금은 이승에 굵은 발자취만 남아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을, 홍 명창은 이렇게 회고 한다.
“김 전 대통령과는 20대부터 알던 사이였어요. 그분이 저한테 꽹과리랑 장구도 배우고, 소리도 배웠죠. 그러니 제자인 셈이에요.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군요.
저는 지난 2000년에 노르웨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했고, 축하공연도 했습니다.
그 뒤 김대중 대통령이 저를 따로 부르신 적이 있어요.
‘그때 고맙다면서 뭐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물으셨는데 ‘별 탈 없이 건강하신 것 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대중 대통령은 눈시울을 붉히며 ‘내 주위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홍 선생 한 분’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는데, 가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문화‧예술인들을 각별하게 대해 주셨던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곤 합니다”
■ 2017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홍 이사장은 문화 활동을 통해 국민 문화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판소리와 여성국극 보존·계승 발전에 힘쓰고, 판소리 작창 및 국악공연 제작은 물론 해외공연을 통해 국위 선양과 국민의 문화향수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홍 이사장은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이고, 앞으로도 국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더 많은 국악인들과 소통하고, 함께 더 나은 방향을 찾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홍 명창은 1996년 문화의 날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을, 2005년엔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