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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눈] 슬픈 사월이 갔다

전라매일 기자 입력 2021.05.02 17:17 수정 0000.00.00 00:00

ⓒ e-전라매일
7년 전 4월 16일,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한인 체육대회가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전날 늦게까지 한인회 임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늦게 잠이 들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 전화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한국 소식이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사관에서 전화가 오고, 한인회 간부들에게서 연거푸 전화가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소식과 며칠 뒤의 한인 체육대회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때 우즈베키스탄에 있었고, 한인회 체육대회는 매년 1,000여 명의 한인들이 참여하는 대단히 중요하고 큰 행사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대사관 영사에게는 “분향소 설치합시다!”, 한인회 사무국장에게는 “체육대회 취소합니다!”
일찍 핀 꽃들은 이미 지고 이제 막 피어난 꽃들은 쌀밥처럼 숭어리숭어리 펴서 제철인 양 아름답습니다. 백제대로 변에 자리 잡은 이팝꽃이 그러하고 건지산에 핀 아카시아 꽃이 그러하고 보랏빛 오동나무 꽃도 한창 푸짐합니다. 사월은 나에게 책 읽기 좋은 계절이었고, 야한 꽃으로부터 해방되어 녹음으로 물들어가는 달이었고, 기다림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시간이었고, 슬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낭만의 달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빚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지금은 얼마나 풍족한가, 지금은 얼마나 편안한가. 이러한 행복은 어디에서 언제부터 있었던가. 어렸을 적의 부족함과 불편함은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의 사회현상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정치인들에게 불만을 품기도 했습니다.
전주에서 살자고 왔습니다. 젊은 청년들을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났던 수많은 학생과 젊은이들을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젊은 목숨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큰 흉터가 아물지 않은 채로 남은, 사월의 기억에 세월호 참사가 더해졌습니다. 1960년의 젊은이가 그러했듯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젊은 목숨들이 세월호에 희생되었고, 4월은 영원한 빚을 남기고 더디 갔습니다.

/김현조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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