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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있어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명구가 탄생하는 현장이다. 흰 바탕이(素) 마련된 뒤에(後) 그림을 그리듯이(繪事) 인격 형성에 있어 인(仁)이라는 바탕 위에 예(禮)라는 치장으로 완성한다는 뜻이다. 스승을 앞선 제자의 바른 깨침, 그로 인해서 공자 지신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다.
또 언변이 뛰어나고 가난했지만 이재에 밝아 후에 부유하게 된 자공도 있었다.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그 사람됨이 어떻습니까?” 내심 칭찬을 기대하면서 자신을 빗댄 물음이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런대로 괜찮지만, 가난하면서도 기뻐하고 부자이면서 예의를 좋아함만 못하다.”라고 대답한다.
“절차탁마와 같이 끝없이 정진하라는 뜻이군요?”라고 되묻자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제자에 반갑게 응수한다. “이제야 그대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다가올 것을 아는구나!” 그 당시 시경은 상당히 수준 높은 단계의 가르침이었다.
제자는 너른 바다로, 스승은 깊은 곳으로 나가게 하는 그래서 동반성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스승을 스승답게 만드는 제자들의 노력을 보면 2,500년이 지난 오늘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위와 같이 ‘탁’을 ‘탁’ 되게 하는 것은 ‘줄’에 메인 변수다. 이와는 달리 제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바를 스승이 ‘탁’하고 건드림으로써 그들을 비상할 수 있게도 한다.
무작정 스승을 따라하기보다는 역할을 바꿔 학습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수업이 끝난 48시간 후의 기억력은 10%에 불과했고, 시청각을 병행한 학습의 경우에는 50%였다. 다만 자신이 선생 되어 직접 가르쳐 본다면 90% 이상을 기억했다고 한다.
롤 플레이(Role play)의 효과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듣는 자 보다 5배 이상의 준비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상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집에 오면 아이에게 그렇게 했는지 되묻는다. 그랬다고 대답하면 곧 우등생이라도 된 듯 기뻐한다. 듣기만 하면 그만일 뿐 그 외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은 무엇을 질문했느냐고 묻고, 그래서 뭣을 배웠냐고 확인한다. 우리의 ‘탁’ 대신에 그들은 ‘줄’을 중시한다. 강원도와 경기를 합친 면적에 세계 인구의 0.2%인 1,300여만 명이 18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전체 수상자의 22%를 차지했다. 특히 2012년에는 12명의 수상자 중 6명이 유대인이었다.
줄·탁의 차이가 가져온 교학상장의 결과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끌려다니는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밀어주되, 1등을 위한 경쟁보다는 특히 저마다 다른 재능을 응원한다고 한다. 독특한 ‘줄’이 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다.
연록의 어린싹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푸른 숲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천지가 숨죽이며 합심해야 한다. 비와 바람과 적당한 온도 그리고 햇빛 등 셀 수 없는 자연의 손길이 ‘탁’해야만 아름답고 푸른 청출어람을 만든다. 씨줄과 날줄 되어 정성껏 함께 만든 세상 청람, 그것이 바로 교학상장에 있다.
/양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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